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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여성 징병제 문제, 남녀평등의 시대에 어떻게 나아가야 좋을까? (feat. 군사기본교육 의무화?)

Pure Intuitive Insight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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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 Insight: 여성 징병제의 평등 논쟁은 동일 군복무가 아니라 남녀 모두가 공공 의무복무를 통해 공동체 경험과 공익 헌신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때 국민 자강과 사회 통합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으며, 군사조직은 전투 효율성을 유지하고 사회는 공공정신을 확대하는 이중 구조가 바람직하다는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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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공적 생활에서 배제하는 것은 인류가 가진 지적·도덕적 자산의 절반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교육을 받고 동일한 공적 의무에 참여할 때, 두 성별 사이의 진정한 이해와 통합이 이루어진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함께 헌신하는 경험은 남녀 모두에게 '공동의 인간성'을 깨닫게 하며, 편협한 이기주의를 극복하게 한다."

—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김기현 의원이 여성의 군사기본 교육 의무화를 주장하면서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자강이 시작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일부에서는 여성 징병제가 진지하게 논의되어고 있다고 한다.

여성징병제가 불가피해진다면 여성도 군대를 가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여성이 군대조직이나 경찰조직 등 현장에서 여성이 행정인력이 아닌 전투인력으로 육성되는 것은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이다.

특히 적과의 전쟁을 통해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게 되는 군사조직은 위계질서가 엄격하여 명령에 무조건 복종할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어 낼 수 있어야 전쟁시에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살아남을 수 있다. 동료의 죽음과 무자비한 살상 앞에 감정이 동요되지 않고 오직 생존만을 위해 명령에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무기 그 자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냉정하게 따지면 인권보호나 자유같은 것이 허용되어서는 안되고, 철저한 규율과 지엄한 명령에 따라 혹독한 금욕과 감정의 차단이 요구되어야 한다.

그래서 군대조직에서 상명하복에 불복하거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나 금욕을 참아내는데 해가 되고 감정을 나약하게 만드는 그 모든 것들은 군대조직을 자멸하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군대에서 인권이나 자유 같은 것을 누리고자 하는게 죽고죽이는 전쟁터에서 바캉스를 누리겠다는 소리만큼이나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 곳에 여성이라는 감성적이고 약한 존재가 들어가게 된다는 것은 군대조직을 교란시키려 하는 것이 아닌 한 여성에게도 국가적으로도 아무런 이득이 없다.

남녀 평등 시대에 여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존재라는게 웬 말이냐고?

물론 그렇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에 여자라고 험한 일을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왜 여성 장교나 여성 부사관, 여성 경찰들을 채용할 때 체력요건이 남성보다 낮게 설정되는가? 그렇게 사회적 약자의 배려를 받고 낮은 조건으로 채용된 채로 업무강도도 상대적으로 낮게 일을 하면서 차별 대우받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날로 먹으려는 심보 아닌가?

여성이 남성보다 낮은 채용조건으로 군대나 경찰 조직에 들어가게 되면 남자들은 그들을 보며 불공정함을 느끼게 되고 남성이 뽑혀야 할 자리에 여자가 들어가서 그녀가 1인분도 해내지 못하고 0.5인분만 하게 된다면 그녀 때문에 동료 남성 군인은 1.5인분을 더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평시에 생활을 한 남녀 군인들이 전시가 되면 남성 군인들은 2배로 고생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것을 인정할 수 없고 여자도 남자 못지않은 전투병력이 될 수 있다면 그 채용조건은 남자와 여자 동등해야 될 것이고, 일할때도 평상시 남자들이 하는 노가다를 여자들도 똑같이 다 해야 한다. 제초기를 돌리든 제설작업을 하든 탄약통을 들고 옮기든 똑같이 남군이 하는 만큼 해내면서 업무성과도 남군이 하는 이상으로 잘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이 신체적으로 약해서 채용조건이나 평상시 업무도 배려 받아야 한다면, 여자보다 신체적으로 작고 가벼운 남자들은 지금 배려 받고 있는가? 왜소한 남자들은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기신체 여건보다 버거운 일들을 매일같이 감당해야 한다.

결국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조건을 남성보다 쉽게 책정되는 것은 부당한 것이다. 평등을 이루고자 한다면 남녀 할 것 없이 체급으로 따져서 평가되어야 하지 남자와 여자의 기준으로 나누어 평가되는 것은 불공정한 것이다. 체급조건으로 여자의 채용기준에는 들어맞지만 남자의 채용기준에는 맞지 않는 왜소한 남자 지원자의 경우가 가장 억울할 것이다.

오히려 군대나 경찰조직에서 여성을 차별받지 않게 일할 수 있게 하려면 채용조건이 남자보다 더 엄격하고 혹독하게 해서 그럼에도 그 일을 하고자 하고 기꺼이 해내는 강성 인력들만 뽑아야 한다.

군대처럼 공동체 정신이 중요한 조직에서는 내가 고생한 만큼 남도 고생하고 서로 같이 똑같은 고생을 할 때 서로 동지애가 싹트고 공동체 정신이 커지게 되어 상부상조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누군가는 남자라는 이유로 1.5인분을 일을 하고, 누구는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보다 덩치가 큰데도 0.5인분 정도만 일을 하게 된다면 그런 조직에서는 서로간에 불신과 증오만 싹트게 될 뿐 그 어떤 단합이나 공동체 정신도 존재할 수 없게 된다.

2019년 국가인권위에서 발표한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 남성간부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여군들은 “차별"의 요소를 가장 큰 인권침해로 생각하였고, 그 비율은 26.4%라고 한다.

군대에서 인권이나 자율같은것을 조장하기 위해 저런 여론조사를 하는 것도 웃긴거지만, 솔직히 까놓고 말해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26.4%는 군대에서 무능하게 잉여로 있는 여군의 비율이 저 정도라는 뜻이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때는 주의해야 하는것이 동등하지 않게 채용되고 동등하지 않게 일을 하는데 거기서 동등한 대우를 바란다는건 역차별이다. 저 여론조사에서는 남성군인들을 상대로 ‘여군에 비해 역차별 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의 내용이 있어야 그나마 공정한 인권실태 조사가 되었을 것이다.

혹자는 여성의 군대 내 차별과 성추행 성폭행과 같은 문제는 군대 내 여성간부의 인원을 늘리는 것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건 무슨 벼룩잡기 위해 초가삼간 다 태울것도 아니고 군대 조직 자체가 위계질서와 명령에 절대복종을 해야 하는 속성의 조직인데 그게 아무리 인권적으로 나쁘게 보인다 해도 그곳은 그렇게 해야 전쟁이란 생사의 고비에서 살아남고 국민을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런 조직을 그냥 그렇게 존속하게 하는 것이 국방에 이로운 것인데 그게 나쁜거라고 여성군인을 늘려서 군대내 인권침해과 위계질서를 없애겠다고?

우리가 착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는데, 악한 속성이 단지 악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세상에서 없애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악의 속성 그 자체로 존재해야만이 국익에 쓸모 있는 것들도 있는 것이다.

군대 조직이 국방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 그들 자신의 인권이나 자율을 기꺼이 포기하고 일정기간 혹은 평생 자신을 희생하는 이유가 바로 그럴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런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다.

더 중요하게 여성이 군대같은 남성적 투쟁적인 조직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는 에리히 프롬의 <여성과 남성은 왜 투쟁하는가>에서 보면 여성이 강해진다는 것은 남자처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성을 키워냄을 의미하고, 여성성을 키워 낸다는 것은 남성성의 특징인 투쟁과 전투, 상대를 죽이는 힘이 아니라 남을 살리고 보호하고 육성하는 그런 모성애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 여성이 진정으로 남자보다 강해지는 방법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여자가 군대같은 조직에서 남자만큼 실력을 발휘하며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있는 모든 여성성을 파괴하고 죽여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진정으로 여성 자신을 위하는 것도 아니며, 국가를 위한 길도 아니다.

여성 군인이란 존재는 기껏해야 그저 개인 사적으로 인생의 도전욕구 하나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할 뿐 그 어떤 사익도 공익도 펼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꼭 여성징병제의 형태가 아닌 남자와 같이 국가를 위해 공익에 헌신하는 “의무복무기간"과 “예비군 민방위 제도” 같은 것을 여자도 똑같이 이행하는 것은 국민 모두에게나 국가적으로도 이로운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대의정부론』과 『여성의 종속』 등에서 공동체를 통합시키려면 공통의 감정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그것이 민족 구성원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강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밀이 강조하는 것은 개인이 공공기능에 참여하게 되면 사적인 이익만을 생각하던 사람도 도덕적인 측면이나 개인적인 자질 측면에의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다고 주장하였다.

남자들이 군대갔다오면 철이 든다고 하거나 사람되었다고 하는 소리가 다른게 아니다.(물론 요즘은 군대가 자율과 인권이 범람하고 여군까지 늘어나고 개인 휴대폰까지 소지하게 만들어 군대조직이 박살나고 있는 분위기라서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군대조직이 정상으로 돌아갔을때 한정해서 과거 우리 아버지 세대는 군대다녀오면 사람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던 이유가 개인이 성인이 되자마자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공익에 아무조건 없이 온전히 헌신하는 경험을 해본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많은 배움과 깨달음을 주는 시간이며 공동체 정신을 함양시켜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될 역지사지와 정신적 성숙이 가능하게 한다.

그것이 젊은 청년들이 자기자신을 위해 군대를 가야하는 이유이다.

예전 이승만 정부때부터 박정희 정부때까지는 군대가 최신 최고급의 기술과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곳이었기때문에 군대에 다녀오면 일반인도 기본적인 지식인으로서의 소양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좌파정부에서는 군대를 가는 남자들을 “도살장 끌려가듯"하는 이미지로 만들어 공공에 헌신하는 그들의 훌륭한 가치를 후려치기 하였으며, 군대조직 자체도 인권보호니 자율이니 이러한 핑계로 공공에 헌신하는 정신을 기르지 못하는 곳으로 붕괴시키고 있다.

그러한 군대환경에서는 그 어떤 공공정신도 배울 수 없으며 개인이 금욕하여 공익과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인내력을 어떻게 키워낼 수 있는지 알 방법도 없게 된다. 공동체 정신은 키울 수 없고 오직 개인의 욕구만 남용하는 인간으로 전락하게 만들 뿐이다.

군대조직은 남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기전에 공공정신을 기르고 자기 욕구를 극기하는 정신을 키워내 공동체 정신에 가장 중요한 역지사지를 키울 수 있는 환경으로 조성할 수 있어야 한다. 군대내 폭행문제는 역지사지와 공동체 정신을 키워내는 것에 달린것이다.

여자들은 남자와 같이 그런 군대조직에는 못들어가는 대신(들어가봤자 남녀모두에게 해악임) 다른 국가기관 및 연구소, 복지기관, 공공기관, 병원 등등 이러한 곳에 남자의 복무기관과 동일한 기간, 동일한 시기에 똑같이 의무복무기간을 설정하고 예비군 제도처럼 평생에 걸쳐 정기적으로 교육받으며 공공정신을 기르고 역지사지를 배우는 시간들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남녀 모두 의무복무기간을 이행한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 취업이나 승진시에 가산점을 제공하고, 전방이나 험지, 오지 등 열악하고 힘든 기관에서 복무하고 예비군 민방위처럼 정기적으로 교육받는 사람들은 가산점에 더블 가산점을 제공하면 빽있고 돈있는 사람들만 쉬운데에 복무하면서 혜택은 똑같이 누리려 하는 사람들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요새 전쟁은 정보전, 세균전, 여론전 이런걸로 싸우는데 위와 같이 될 수 있다면 여성징병제나 여성 기본군사교육 같은거 하지 않아도 국민 모두가 자강할 수 있게 되고 국가 비상시에 전 국민이 각계 각 분야 비상인력으로 투입되어 국가의 국방은 적은 인구수로 효율적으로 방위될 수 있을 것이다. 공무원도 줄일 수 있어 세금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국가의 징병제도가 운영될 수 있다면 밀이 『대의정부론』에서나 『여성의 종속』에서 이야기한 공동체 통합을 이루는 공동의 경험을 남녀 모두 함께 할수 있게 되고, 남녀 모두 성인이 되자마자 공공정신을 함양시키는 경험들을 통해서 공익과 사익의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터득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인격적 성숙과 개인의 잠재력 발굴 등 개인적으로도 분명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기현 의원이 주장하는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 여성 의무화라든지 여성징병제는 물론 취지는 이해하고 동감하나 그 효과의 면에서 볼 때 그닥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고 개인적으로도 큰 효용이 없어보여서 남녀 갈등만 더 부추기게 될 것 같다. 뭐 공공기간의 의무복무 기간 직전에 4주간의 군사훈련을 상식선으로 경험해두게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김기현 의원이 말한 국민 자강능력을 키우려면 고작 4주간의 군사훈련 받는 걸로는 아무 효과가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하는 것과 같은 의무복무기간을 동일하게 이행하여 여자도 공익에 헌신하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인격적 성숙과 자아계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버텨내는 과정을 다함께 겪어야 국민 통합과 동시에 국민자강능력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선진국에서 여성징병제를 충분히 하고 있고, 다른나라 군대에서는 인권이 보장되며 자율적이라며 우리 대한민국의 군대문화만 너무 억압적이라며 엉뚱한걸 갖다붙일 생각을 말자. 말이 되는가? 그 국가들은 우리 대한민국처럼 사방이 죄다 무력과 침공을 좋아하는 깡패국가들에 포섭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러시아, 중국, 북한을 머리에 이고 있으며, 일본이 아무리 자유민주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그 뿌리는 사무라이들이다. 이런 국가들을 상대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군대는 당연히 그 어떤 국가보다 강압적이고 위계질서 철저하여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군인들이 양성되지 않으면 그들중 어떤 누가 침략했을시 절대 방어하지 못하고 자멸하게 될 뿐이다.

선진국에서 경험해보지 않은 거라고 불가능하다 생각하지는 말자.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누군가를 벤치마킹할 때는 넘어섰고 우리가 선도하는 뭔가를 만들어서 다른나라가 벤치마킹하러 오게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나라는 이제 퇴보만 남을 뿐이라고 『축적의 시간』의 이정동 교수가 말했다. 이제는 우리가 먼저 선도하고 다른 국가들이 벤치마킹하러 오고 그런식으로 전 분야를 발전시켜야 어려운 국제정세 속에서도 그것을 뚫고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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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힘없는 한명이 다수랑 맞짱떠도 이길수 있는 세상이어야 민주주의 세상이라 할 수 있다 - 존 스튜어트 밀 『대의정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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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 Insight: 민주주의는 단순한 다수결이 아니라 각자의 분야에서 지성과 덕성을 갖춘 개인이 다수의 이기성과 집단 감정에 맞서 소신 있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민주주의로 기능하며, 밀의 대의민주주의는 이런 숙련 민주주의의 조건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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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을 가진 한 사람이 단지 이익만을 좇는 천만명과 비등한 사회적 힘을 가진다"

— 존 스튜어트 밀, 『대의정부론』// 비주류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한명이 다수랑 맞짱떠도 이길수 있는 세상


밀의 『대의정부론』(1861년)은 벤담식 공리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여 힘없는 개인이 일부 집단의 이기주의에 희생되지 않을 방도를 찾는 과정에서 나온 책이다. 밀은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를 통해 나온 정치이론을 수정한다.(양적 공리주의로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불가능하다. https://shadowj.org/reflections/qualitative-utilitarianism-mill/)

결론부터 말하면, 사회적 행복의 총합을 이끌어내는 좋은 정부는 개개인의 이기적 선호의 총합을 극대화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각자의 ‘인간성’의 계발을 위해 ‘덕성과 지성의 총량을 증대시키는 것’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각자의 덕성과 지성을 발달시켜 자발적 능력을 스스로 획득하는 인간을 많이 만들어야 함을 주장하는 이유는

밀은 플라톤의 철인정치와 같이 선하고 능력 있는 독재자가 국민들을 위해 그 모든 것을 다해주는 것은 국민을 무능하고 무력하게 망칠 뿐 국민의 진정한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밀이 그러한 선한 독재자의 다스림을 긍정하는 경우는 오직 자유를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노예들이나 계몽되지 못하여 지성과 덕성을 갖추지 못한때에 한해서인데, 그들에게는 선한 독재자의 다스림으로 스스로 통제 못하는 자유를 제한하는것이 더 이로울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국민들이 스스로의 자유를 통제할 수 있는 상태라면 그들 스스로 자발성을 길러주는 편이 이롭다고 보았다.)

밀은 국민들 스스로 자발적인 능력과 실력을 키워냄으로써 각자 자기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자기의 분야만큼은 그 어떤 누구보다도 자신이 대표할 수 있을 정도의 지성과 덕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 어떤 훌륭한 위정자가 국민을 대신 대변해준다고 해도 그들은 내가 아니기 때문에 국민의 입장 그대로를 헤아리고 그것을 실현시켜주는것은 어려운 것이라 보았고, 그 누구도 자기 문제는 자신이 판단하고 해결할 때 가장 만족스럽게 해결되므로 외부의 누군가가 대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맞지 않고, 나의 최대의 행복에도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밀은 내 문제를 내가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실력과 지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고, 스스로 힘쓸 생각을 하지 않고 남에게만 의존하려고 하는 마음으로는 누군가의 노예나 국가의 노예로 전락될 뿐이라고 경고한다.

이것은 루소의 직접민주주의와는 다른 것인데, 밀이 직접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이유는 국민 개개인 모두가 국정의 모든것을 바르고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자기 생업을 포기한 못한 채 정치, 행정, 입법, 사법 이런 고도의 전문분야에 모든 사람이 매몰되어야만 가능한 것인데, 이것은 딱보기에도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일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 복잡한 전문적인 문제들을 국민들 모두가 직접 판단하고 매번 국민들이 결정하는 시스템은 어떻게 보면 국민을 자기인생 못살게 만들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시키는 꼴이다.

더욱이 국민 다수라고 하는 무리의 실체는 목소리만 큰 극소수의 무리가 절대다수의 전체국민들을 휘두르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국민들 전체가 국정의 모든 분야를 정확히 판별할 지적능력과 덕성을 갖추지 않고서는 잘못된 결정을 하는 쪽으로 전체가 휩쓸려버릴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그래서 밀은 국민들이 직접민주주의의 속성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정치체제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각자 자기 전문분야를 대표하는 대의 민주주의가 (가장 최고는 아니지만) 그나마 최선의 정치체제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 직접민주주의의 폐해는 도편추방제로 훌륭한 위인들을 공동체에서 다 내쫓아내는 식으로 망해버린 고대 그리스 아테네를 통해서 증명되었다고 보고, 더구나 직접 민주주의라고 불리우던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모든 인민을 다 포함한 것도 아니었으며 그 시기는 매우 짧았다. https://shadowj.org/reflections/belief-honor-death-socrates/)

정치체제의 최고는 물론 직접민주주의이겠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비효율적으로 국민들을 개고생시키는 시스템이므로 정치체제의 최선은 대의 민주주의로 이루어낼 수 밖에 없는것이다.

대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국가가 국민들로 하여금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각자의 잠재력을 높여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은 각계의 전문가들이 되고, 전문성이 뛰어난 자들이 그 분야의 대표가 되어, 자신의 분야에 대한 소신있는 발언을 할 수 있도록 대의기구 내 토론기능과 담화기능을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참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밀은 경제적 능력을 스스로 갖추지 못해 자신의 생존을 남의 도움에 의지하여 사는 사람들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말 것을 주장하는데, 이것 때문에 밀의 사상이 차별적인 엘리트주의라는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밀이 소신껏 밝힌 내용에서는 자기 인생도 스스로의 힘으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보다 나은 사람들의 인생을 어떻게 판단하고 좌지우지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아마도 밀은 자신이 삶의 과정속에서 지성의 힘이 자신의 능력과 공익을 위하는 덕성을 길러주었음을 스스로 확인하였기에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발적 힘을 키울 것을 독려하기 위하여 저러한 강성발언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밀은 덧붙여 그 어떤 누구도 자기 자신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어떤 무엇에도 의지하려는 바가 없을 때 비로소 사회의 모든 악에 용감하게 대항할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자발적이지 못하고 남의 힘에만 의존하려는 사람은 세상의 악에 굴복되어버릴 뿐 결코 그것을 이겨낼 수 없다고 보았다.

누구든지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스스로 지킬 힘이 있고, 또 향상시키려 노력해야 타인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는다.

밀의 이러한 엘리트주의적 발언은 무능하고 무지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힘을 갖추어 사회의 악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기 위한 힘이 되어줄 지성과 덕성의 힘을 갖출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밀이 주창한 대의 민주주의는 엘리트주의가 아닌 “숙련 민주주의"임을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잘난 사람들만 정치에 참여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 열심히 갈고닦은 사람들이 자신의 분야에 대해서 소신 있는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이런 숙련 민주주의를 구축시킬 수 있어야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서 다수로 위장된 사악한 일부의 이기성을 견제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국민 각자가 자신의 분야에 지성과 덕성을 갖춘 전문가들이 될 수 있어야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이 자신의 지지세력을 갖추지 않더라도 단지 이익만을 좇는 다수의 이기심에 대항하여 소신있게 의견을 펼쳐서 그들과 맞먹는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밀은 민주주의란 소수의 의견이 보장되었을 때에만 잘 이루어지는 제도이기 때문에 다수가 장악한 대중민주주의는 필시 독재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루소의 직접민주주의는 다수의 일반의지를 절대적인 것으로 강제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어떤 일방의 이기적인 집단이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 다수를 속여서 장악해버리고 그 다수의 힘으로 모든 것을 제압해버리게 된다면 그와 생각이 다른 국민들은 소외되고 억압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어떤 공동체든지 다툼을 벌이는 경쟁세력이 존재했을 때 장기간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 교황 대 왕권의 대립, 왕권 대 봉건귀족의 대립, 봉건귀족과 부르주아의 대립, 왕과 인민의 대립, 전통개혁가와 종교개혁가의 대립 등 이러한 경쟁관계와 갈등이 첨예했을 때 문명과 지성이 발전되었다.

이처럼 대의기구에도 ‘대립기능’이 없으면 정부는 그 즉시 퇴보와 부패를 벗어날 길이 없다.

어떤 체제이든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강력한 존재가 있어서 경쟁세력을 제압하고 자기 뜻대로 모든 일을 처리하게 되면 그 나라에 발전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래서 루소의 일반의지로 대중을 장악하여 이루어지는 직접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붕괴시키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시스템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루소의 사상이 적용된 프랑스 혁명 이후 자코뱅 정부의 무시무시한 공포정치로 그것이 증명되었다고 본다.

오늘날은 정치가나 권력자에 대한 압제로부터의 보호만으로는 부족하다. 민중들이 지배적인 여론이나 지배적인 감정의 전제(공감의 강요)에 대해서도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배적인 여론이나 지배적인 대중 감정에 맞지 않는 여러 가지 개성의 발전을 저해하거나 그런 개성 자체가 아예 형성되지 못하도록 모든 사람들을 평등이라는 이유로 똑같은 틀에 억지로 끼어 맞추려는 사회적 분위기 자체에 대해서도 민중은 보호되어야 한다.

“이거 나만 불편해?“라는 다수여론의 감정의 주입으로부터
“응 너네만 불편해” 라고 해도 이상할게 없는 감정의 다양성 또한 보장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 대해서 소신발언을 쉽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피터지게 토론하고 싸우는 과정을 사회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숙련 민주주의를 향한 진보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정신적 지적 탁월성을 각자가 자신의 분야에서 키워낼 수 있어야 한다.

한 사람(소수파)이 자신의 탁월한 지성과 능력에 힘입어 그의 인격의 무게와 논리의 힘에 의해 다수라는 수적열세를 상쇄하고도 남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이어야만이 민주주의 체제가 진정 평등하고 공평하며 “모든 사람에 의한 모든 사람의 정부"를 가능하게 해준다.

이같은 민주주의라야 현재 널리 퍼져있는 가짜 민주주의의 폐해를 극복해낼 수 있다.

소신있게 당당하게 살고 싶으면 그만큼 실력을 출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고 비주류로 살아도 내 자유를 온전히 지켜내며 일당백의 실력을 갖추려는 노력들이 지금 국민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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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양적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불가능하다. 질적 공리주의가 그것을 이룰수 있다 - 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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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 Insight: 양적 공리주의는 다수의 행복 총량을 기준으로 개인 희생을 정당화할 위험이 있으며, 밀의 질적 공리주의는 인간의 개성·덕성·지성 기반 행복을 인정함으로써 개인 자유와 사회 전체 행복을 동시에 보존하는 철학적 기준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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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단순히 쾌락의 수치를 합산한 결과가 아니라, 인간다운 고귀함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품격 있는 만족이다. 전체의 이익을 위해 소수를 도구로 삼는 사회는 결국 인류의 존엄을 파괴하며, 이는 가장 큰 불행(해악)을 낳는다. 깨어있는 지성인 한 사람의 질 높은 고뇌가 눈앞의 쾌락에 눈먼 다수의 선택보다 인류의 진보에 더 큰 효용을 주는 법이다."

— 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


18세기 계몽시대를 거치면서 개인의 자유와 소유권이 중시되어가면서 근대적 의미의 민주화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영국의 명예혁명(1688년), 미국의 독립혁명(1776년), 프랑스 혁명(1789년)을 낳았다.

근대적 의미의 민주화가 무엇보다 중시했던 점은 과연 어떻게 해야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평등을 결합시킬 것이며, 경제번영과 사회질서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 것인가였다.

결국 사회의 평등을 고려하면서 개개인의 행복을 극대화할 방안을 강구하려 하였고 그에 대응하여 나타나게 된 것이 바로 ‘공리주의’이다.

공리주의자들은 인간이란 언제나 자신의 쾌락과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이러한 공리주의는 제러미 벤담이 발전시켰고 그와 가까운 제임스 밀이 공리주의 경제학자였으니 그의 아들인 존 스튜어트 밀은 어릴적부터 공리주의 사상가들의 가르침속에서 자라나게 되었다.

그러나 존 스튜어트 밀이 성장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지성능력이 생겨났을 무렵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에 대하여 한계점을 발견하게 되었고 자신의 사상적 대부라 할 수 있는 벤담의 사상이 옳지 않은 것임을 깨닫고 나아갈 방향을 잃고 한동안 방황하게 된다.

밀이 생각하기에 벤담의 공리주의는 ‘양적 공리주의’로서 인간의 행복과 쾌락을 한단위로만 계산할 뿐 어느 누구도 한 단위 이상으로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정량적으로 단일화시켜 개개인이 개성에 따라 추구하는 바가 달라질 수 있는 쾌락의 상대성과 다양성 측면을 무시하는 한계가 있었다.

밀은 많은 고민 끝에 행복한 사회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간 개개인의 다양성과 특수성은 절대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데 결론을 내렸고, 결국 자신의 사상적 스승인 벤담이 말하는 공리주의로는 인간의 행복을 가늠할 수 없다고 보았다.

밀은 자신의 저서 『공리주의』에서 “쾌락의 측정이 반드시 양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를 비판한다.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는 사회적 행복의 총량을 높일수만 있다면 소수의 쾌락은 무시될 수 있게 되고, 그렇다면 사회전체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은 당연한 것이라는 사고관을 가지게 된다.

또한 벤담의 공리주의는 과정이야 어떠하든 결론만 좋으면 상관없다는 주의라서 사회의 행복을 위한다면 그 과정과 수단이 악해도 다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이 되어서

벤담의 공리주의로는 전체를 위해 개인이 기꺼이 희생되어야 한다거나 해악을 끼치는 국민들을 집단학살해도 된다는 전체주의 독재이론(히틀러 나치즘, 스탈린 공산주의, 모택동 사회주의)이 타당한 것이 되어버린다.

히틀러도 독일을 위해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고, 스탈린과 모택동도 자신들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면 수천만 인민들의 죽음은 대의를 위해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거라고 인민들의 희생을 당연시하였다.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는 전체의 이익을 위해 무고한 개인의 희생을 도덕적으로 정당화시켜버리기 때문에 전체주의 독재사상으로 이어지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밀은 벤담의 공리주의가 그러한 해악을 낳을 것이라고 진작 직감하여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양적 공리주의를 한계를 지적하고 그 해악을 제거하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된 것이 “질적 공리주의"이다.

질적 공리주의는 인간의 쾌락과 행복은 개개인마다 다 달라질 수 있으며, 각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쾌락의 행태도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그것을 모두 똑같이 한단위로 정량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이다.

또한 밀의 질적 공리주의는 인간의 자기개발적 상승욕구를 존중하는 것으로서 보다 더 지적이고 덕스러움을 추구하려는 장기적이고 정신적인 쾌락이 한낱 일시적으로 끝나버리는 육체적 쾌락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이 짐승이 아닌 한 도덕적이고 바람직한 삶을 각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를 배제하고서는 사회적 행복의 효용을 따질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밀은 인간이 권력을 얻는 과정에서 또한 권력을 얻고 난 뒤에 하는 행동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그가 아무리 사회 전체를 위하는 입장인 듯 보여도 실상은 그저 일부 집단의 이기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밀의 관점으로 히틀러, 스탈린, 모택동의 인민 대학살을 통한 혁명 완수의 권력추구 행태를 보자면, 말로는 인민의 해방이라고 표현하지만 이것은 그저 지극히 이기적 집단의 이기주의의 극대화일 뿐이고, 사회 전체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 아니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밀은 질적 공리주의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와 질적 쾌락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인간의 욕구는 다양하기 때문에 당연히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인간이 바른 지성과 덕성을 갖추어 역지사지 심성을 기르고 다양한 관점에서 인간을 헤아릴 수 있어야 갈등과 충돌이 많은 세상에서 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이로운 가치를 냉철하게 판단하고 바르게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인간의 쾌락과 행복은 상대적이라서 누군가는 값싼 육욕을 추구하는 쾌락이 지적이고 도덕적인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더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밀은 그런식으로 자기만의 쾌락에만 빠져 보다 상위의 지적 도덕적 행복을 추구하며 살지 못한다면 인간은 역지사지가 안되어 오직 자기 이익과 쾌락만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끼쳐도 된다는 관념이 자리잡게 되기 때문에 결국 사회적 전체 행복의 총량은 감소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결국 밀의 질적 공리주의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바른 생각을 갖춘 지성인 한 사람의 가치판단이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다수의 가치판단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어 다수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 함부로 대하려는 행태를 견제할 수 있는 사상의 근원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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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교육제도를 예측가능하게 안정화시켜야 평등한 교육과 독립적 인재양성 기반이 조성된다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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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 Insight: 교육제도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은 획일적 결과 평등이 아니라 각 개인이 능력과 성향에 맞게 자율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보장하는 기회평등의 조건이며, 정책 불안정성은 심리적 의존성과 교육격차를 확대하여 독립적 인재 형성을 저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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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부터 90세까지 누구나 빤히 알수 있는 예측가능 교육제도가 누구나 안정적으로 공부하고 자율적인 자기개발도 할수 있게 한다"

— 예측가능한 정책이 국민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한다


마시멜로 효과와 존 보울비의 애착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상대에게 불확실하게 비일관적으로 행동할수록 상대는 심리적으로 점점 불안해져서 장기적 관점을 생각하지 못하고 주관이 사라져 근시안적이고 반응적인 인간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마시멜로 효과 습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https://shadowj.org/human-behavior/marshmallow-trust-habit/-)

이것을 빗대어 보면 현재의 한국의 교육제도나 입시제도는 아이들을 안정형 인간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개정된 8차 교육과정으로 그 이후의 교육정책은 정해진바 없이 수시개정을 통해 조금씩 수시로 바꾸기로 했다는데, 이것은 겉으로 보면 각 학년별 특수성을 존중해 주는 듯 보이지만 그 효과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감만 가중시켰다.

양육자는 수시로 바뀌는 교육제도와 입시제도에 신경 쓰느라 각자의 생업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 학생들은 그러한 예측불가능성 때문에 입시에만 매몰되게 만들어 각자 자발적인 자기개발을 어렵게 만들고 독립적이고 개성있는 인재가 되지 못하게 된다.

교육과정이 10년마다 바뀌는 것도 그 과도기에 끼어있는 학생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는데 이것을 수시로 계속 바꾸는 식으로 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니 솔직히 우려된다.

그동안 심리학이나 자유에 관한 철학책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자율적이고 개성있는 주관 뚜렷한 독립적인 인재를 양성시키려면 국가 제도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바탕이 되어야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배울수 있었다.

교육제도와 입시제도는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초등학생이 양육자의 보살핌이 없더라도 자신의 대학입학과정까지의 전교육과정을 스스로 파악 가능하고 충분히 예측 가능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단순화시켜 지속성있게 안정화 시켜야 한다고 본다.

육아를 해보지 않는 사람도 90세 어르신도 어린아이들도 국민 그 누구라도 대한민국의 교육제도와 입시제도에 대해 다들 당연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내면 맞벌이로 고생하여 교육제도에 전혀 신경을 못쓰는 부모도 아이들을 쉽게 교육할 수 있을 거 아닌가?

맞벌이로 바쁜 부모, 한부모 가정, 부모가 없어 조부모가 양육하는 아이, 지적능력이 낮은 장애인 부모를 둔 아이 등 이 모든 아이들이 가정환경이 좋고 자녀양육에 집중하는 부모님을 가진 아이들과 동일하게 교육정보를 얻을 방법은 교육제도를 예측가능하게 만들어 그것을 꾸준히 안정되게 지속시켜주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교육정책이나 입시제도가 매번 바뀌면서 복잡하면 부모중에 한명은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면서까지 자녀양육에 매달려야 하고, 그런 어려운 제도를 깔끔히 분석해주고 관리해 줄 사교육이 절실히 필요해지며, 그로인해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지면서 어려운 가정환경의 양육자와 아이들을 더욱 소외시키게 된다.

가정의 보살핌이 부족하면 학교 선생님들을 통해서라도 정서적 안정을 얻을 수 있어야하는데 학교 선생님은 행정업무나 평가 등이 과중되어 소외된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을 수 없도록 공교육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과 생존하는 것 자체로도 힘든데 교육과정이 매해 바뀌고 워낙 복잡산만하니 정신까지 탈탈털려 피로하게 만들고, 학교 선생님들은 행정이나 평가 등에 정신을 소모시키게 만들어 어린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소외된 인간으로 자라나게 만든다.

이기적인 권력자들에게만 유리한 소외된 인간의 위험성은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경고한 바 있다.(국민은 어떤 과정으로 전체주의 도구로 전락되는가 https://shadowj.org/power-system/2022-archive-totalitarian-mass-control/)

교육제도가 무슨 예측불가능한 일기예보 보듯이 수시로 전전긍긍하면서 교육부의 신호에만 반응하게 만드는 파블로프의 개 조련하는것도 아니고, 그렇게 부모와 아이들을 불안정형으로 전락시키니 아이의 자율성과 독립심이 어떻게 커질 것이며, 입시 공부 외의 자기만의 자기개발에 힘쓰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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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마시멜로 효과, 습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지능과 상관없다(feat.육아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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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Display Name: Human Behav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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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 Insight: 장기 인내력과 자제력은 지능이 아니라 신뢰 경험과 반복된 자기약속 이행을 통해 형성되며, 습관과 자기신뢰 축적이 인간 행동 지속성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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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효과. 지능의 차원이 아니라 욕구조절능력에 달린것"

— 내 자신에 대한 신뢰감 얼마나 채워나가고 있는가


마시멜로 실험의 결과는 자제력과 지능이 인과관계가 있으며, 성공하는 인간은 선천적 혹은 어린나이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속연구에 따르면 마시멜로 효과는 지능이나 자제력의 문제가 아니라 ‘실험자의 신뢰도’와 더 높은 상관관계가 있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 의심될만하다면 자제력과 지능이 높아도 마시멜로를 즉시 먹어치웠다고 한다.

가정환경이 어려워 부모가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사주겠다는 약속을 매번 어기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지금 참고 인내하면 훗날 좋은 결과가 온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지금 참고 인내해봤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경험만 해왔기 때문이다.

(※가정환경이 어렵다는 것은 경제적 빈곤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풍족해도 부모가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환경일때도 가정환경이 어려운것으로 봐야한다고 본다.)

또 경제적으로 부유하여 굳이 마시멜로를 먹지 않아도 얼마든지 더 좋은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아동은 자제력이나 지능과 관계없이 마시멜로를 먹지 않았다.

미래의 더 큰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기꺼이 미룬다는 마시멜로 효과는 지능이나 자제력과 상관없이 “신뢰도"나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으로 정의를 바꾸어 정리할 수 있겠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 공부하는 수험생들이나 자기개발을 하는 취준생 중에서 누구는 성실하게 꾸준하게 해나가는데 누구는 의욕이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포기하게 되는 차이는 바로 이 마시멜로 효과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능이나 자제력과는 상관이 없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도"가 얼마나 큰가에 좌우되는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견뎌내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기준에서 뭔가를 참아냈는데도 이룬 것이 없을 때 그렇게 된다.

내가 현재를 참아냈을 때 무언가를 성취해낸 경험이 있어야 장기적으로 인내를 해야 하는 수험공부나 취업준비 자기개발 등을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인데,

이건 도대체가 어느 정도 인내해야 그것을 이룰지, 내가 얼마만큼 성실해야 그것을 이룰지 자기 자신에 대한 경험 정보가 없다 보니 내 기준이 아닌 남 기준으로 자신의 공부량을 판단하고 비교하기 때문에 그렇게 비교 과정에서 오는 나에 대한 실망감까지 더해져서 의욕은 점점 잃어가게만 된다.

아무런 성취를 경험해 본 적이 없어 자신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노력하고 인내해야 결과를 얻을지 감이 안잡히는 사람들은 “루틴을 오랫동안 쭉 이어나가기"를 통해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고, 그러한 루틴으로 자존감이 살아났을 때 자기가 목표로 하는 것을 주관을 가지고 내 식대로 꾸려나갈 수 있게 된다.

각자가 어느 정도 수준의 루틴을 만들어낼지는 각자의 자기신뢰도에 따른 것이고, 단 한 번도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본 적이 없어서 매번 실망이다 싶은 사람은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루틴을 만들어 나가야 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각 잡고 깔끔하게 개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5분간 스트레칭하기, 하루 5분간 제자리 뛰기 하기, 잠자기 전에는 심호흡 30번 꼭 하고 자기 등등등

이렇게 아주 쉬운 것들을 3일간, 일주일간, 보름간, 한달간, 두달간, 100일간 이어나가면서 하루도 빼지 않고 꾸준히 해나간다면 자기신뢰감이 커져가면서 더 큰 목표도 거뜬히 꾸준히 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종이한장 드는 수준으로 아주 쉬운 것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하루도 빼지 않고 밥 먹듯이 무의식적으로 오랜기간 이어나갈 수 있는 정신의 힘을 유지시키는 습관을 들이는것이 핵심이다.

(참고)

유아를 키우는 부모님의 경우에는 아이의 칭얼거림이 귀찮아서 “그래그래 해줄게 해줄게~ 나중에 사줄게~“이런 말을 생각 없이 했다가 아이와의 약속을 안지키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는데, 육아과정에서 아이와 소통할때 귀찮거나 난감해서 그냥 가볍게 해버렸던 거짓말(?)이 그 아이가 자라나면서 인내심과 자제력이 없는 자기신뢰감이 낮은 아이로 만들 수도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이게 마시멜로 후속실험의 교훈이고, 존 보울비의 애착실험을 통해서도 증명된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도 『행복의 정복』에서 아이와 소통에서 차라리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는 것이 그 아이의 바른 인격형성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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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수치심: 공인에게 더욱 필수적인 덕목은 바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다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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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Display Name: Notes on Living
Reasoning Type: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Core Insight: 수치심은 개인의 과오를 교정하고 공인의 책임성을 유지하는 도덕적 안전장치이며, 수치심이 사라질 때 사회적 신뢰 붕괴와 권력 남용이 확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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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에 대한 예민한 감각, 즉 오점(汚點)을 상처처럼 느끼는 그 고귀한 수치심이 사라진 시대에는, 법의 정신만으로는 공동체를 유지할 수 없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야말로 법보다 강력한 도덕적 질서이다."

— 에드먼드 버크


뭔가 자신의 실수가 대중들앞에 드러나서 일이 잘못되었을 때 “아몰랑 그냥 뭉쓰고 버티자"라는 생각보다 “아 정말 이거 창피하네"라는 반응이 인류 전체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반응이라고 존 스튜어트 밀의 『대의정부론』에 나와있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한다.

그때는 분명 그것이 맞는것인줄 알았지만 나중에 전체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돌이켜보니 그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을 수도 있고 뭐가 더 나은 길인지 알 수가 없어 일단 저질로 놓고 후회하는 경우도 있고 하여간 인간의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한다"는 관념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기에 독단을 부려서는 안된다는 뜻이고, 또한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스스로 교정을 해내고 바로잡을 때까지 너그럽게 서로를 지켜봐주고 기다려주는 관용이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인간이 자신은 그 무엇도 교정할 필요가 없고 다른 사람들을 다 무시하고 독단을 부려도 될 만큼 완벽한 존재라면 그런 사람은 한치의 잘못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완벽할테니 수치심 같은 것을 느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리고 그런 세상은 “인간은 절대 잘못을 해서는 안된다"는 관념이 자리잡을 것이다.

그러나 간혹 어떤 사람들은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한다"는 관념을 마치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니까 나 역시 이 정도 잘못을 저질러도 그건 죄가 아니야"라는 식으로 자신의 잘못이나 과오를 교정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시키는 것으로 악용한다. 그러고는 정말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사람들을 기만하거나 혹은 실제로 정말 그렇게 믿어버리기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이렇듯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상황은 두 가지뿐이다. 너무나 완벽해서 잘못을 단 한 번도 저지르지 않거나 완벽함을 가장하기 위해 진실을 조작하는 경우이거나. 수치심을 느끼기 싫다면 이 두 가지 중에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만큼 완벽한 자신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은 수치심을 느끼는 과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신의 과오때문에 어떤 일이 잘못으로 드러났을 때 정말 나 자신이 부끄럽다고 느낄 줄 아는 사람은 ‘내가 그러지만 않았다면 그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고, 그랬어야만 했다’고 생각할 줄 아는데서 나오는 감정이며, 그런 감정이 들어야 두 번 다시는 그런 과오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실수를 번복하지 않고 그것을 개선시키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완벽한 사람으로 보여지고는 싶은데 자신의 과오에 대한 수치심에 직면하고 그것을 반성하고 교정하기를 싫어하게 되면 진실을 조작하는 사기꾼이 될 수밖에 없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어쩔 수 없었다며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나만 재수없게 걸린거라며 나의 과오를 탓하기보다 나의 잘못이 까발려지게 만든 외부의 것을 탓하게 된다. 그런 수치를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고치려 하기보다는 그것을 그냥 덮으려하고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에 대항하고자 한다.

자기 혼자만의 안위를 위해 부끄러운줄도 모른 채 진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고 사람들이 진실을 알 수 없도록 애매모호하게 방치해두어도 뻔뻔할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을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과 정의에 대하여 불신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수치감을 느끼려하지 않는 사람이 뭇 대중앞에 나서는 공인이라면 그 사람 하나때문에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진실과 정의에 대한 환멸을 가지게 되어 진실하고 진정성 있게 살아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노력하고 솔직하게 살아봤자 거짓으로 은폐하는 사람들이 정상이 되고 내가 비정상처럼 되어가는데 그 누가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할 것인가?

결국 힘이 없는 보통 사람들은 그러한 부조리한 세상 앞에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고, 그런 세상을 위해서는 그 어떤 노력이나 의욕도 없이 아무런 꿈도 꾸지 않은 채 그저 그런 무능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편이 낫겠다는 마음만 들게 된다.

그런 수치를 모르는 인간들이 늘어나서 대중 전체가 이런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게 되면 나쁜 의도를 가진 소수가 대중을 장악하고 자기멋대로 권력을 악용하게 된다. 그래서 일부러 그런 부조리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열심히 살고싶은 의욕이 싹 사라지게 만들어야 무능력한 인간들을 상대로 권력을 남용하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공적인 인물이 수치심을 모르고 자신의 과오를 숨기고 은폐하게 되었을때의 파장이 이런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성실하고 정직하게 이룩한 것으로 발전하는 대중이 있는 사회는 자신의 노력으로 이룩한 소중한 것들이 나쁜소수의 부조리에 악용되고 망가져버리는 것이 싫기 때문에 그러한 부조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예방하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자신이 그저 무기력하게 아무런 뜻도 없이 살아가게 된다면 소수의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나 자신을 노예상태로 만들어도 가만히 있게되고 무엇이 왜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채 어떻게 해볼 의지나 지력이 없어 그냥 당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수치심을 모르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인간으로 전락되지 않고 살아남을 방법은 그들에게 물들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반대로 수치심을 느끼는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한 자들에게 맞설 지력과 능력을 키워내는 과정은 반드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의 지력과 능력을 완벽에 가까워지게 만들어주는 힘은 수치심이라는 감정에 직면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드먼드 버크는 수치심이 자신을 주시하는 동안에는 미덕이 마음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수치심은 비록 나를 괴롭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들겠지만 그러한 수치심으로 나 자신에 대해 현타가 와야만이 스스로를 개혁시킬 마음이 생기고 나의 부끄러움을 극복한 그 힘으로 나 자신과 내 주변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수치심을 느끼기 싫다고 진실을 은폐하고 뭉쓰는 사람이 되어버린다면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무능력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나의 지력과 능력 또한 못쓰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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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정력을 바르게 쓰기: 난 너무 충동적이야 이대로 내인생 쓰레기 되면 어쩌지?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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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 Insight: 강렬한 충동성과 정력은 파괴적 성향이 아니라 방향과 자기통제에 따라 선행·창조성·자기실현으로 전환될 수 있으며, 개성 발견과 자기 규율이 이를 삶의 동력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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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유혹에 잘 빠지는 충동이 강한사람. 그는 다른 사람보다 악행을 많이 할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선행도 남보다 더 많이 할수 있는 사람일수도 있다."

— 존 스튜어트 밀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인간이 개인의 자유를 맘껏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자신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유를 누릴 자격을 갖추려면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해낼 수 있는 내적 자기관리 측면을 중시하였다.

이전에 인간의 양면성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와 비슷한 내용을 밀의 시각에서 덧붙이겠다.

밀은 항상 위험한 유혹에 잘 빠지는 충동이 강한 사람은 그로인해 누구보다 실수도 많이하고 그 충동성이 강한 성격탓에 악행을 더 많이 저지를수도 있지만, 반대로 선행도 더 많이 해낼 수 있는 자질로 보았다.

강렬한 충동이란 정력의 또 다른 이름인 셈이라는 것은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 자신의 정력을 잘못된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악용하게 되면 악행이 되는 것이고. 바른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잘 정제하여 쓸 수 있다면 사회의 큰 힘이 되는 사람으로 발현 될 수 있다.

정력적인 사람은 나태하고 무감각한 사람보다 더욱 생기가 넘칠 것이고, 강렬한 충동을 만들어내는 그 강렬한 개성은 강렬한 감수성이 내재된 것이기에 나쁜일에도 쉽게 자극될수 있을 뿐더러 올바르고 정의로운 덕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가장 열렬한 열정의 신념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또한 그렇게 자신이 쉽게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충동을 제어해내고 다스리는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어떤 사람보다 강한 의지로 자신이 원하는대로 삶을 이끌어가는 강한 통제력을 지닌 사람이 될 수 있다.

충동적인 자신을 스스로 다스릴수 있게 된다면 그 사람은 이 세상 두려울 것이 하나 없게 될 것이다. 자신을 무너뜨리고 흔들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말고는 다른것은 존재하지 않을만큼 정말 강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밀은 사람들이 나쁜 행위를 저지르는 까닭은 그들의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약해서 양심만으로는 자신을 통제할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강렬한 충동이 발현되는 이유는 자기안에서 적절한 균형감각을 잃었을때에만 발생된다고 보았다.

그러한 강렬한 충동이 나타날만큼 자기 안에서 균형감각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자신의 소명을 발견해내지 못한 탓에 나의 이 강렬한 충동을 내 안의 어떤 고귀한 자질로 올바르게 쓰여져야 하는지를 자기 스스로 알아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직 자기만의 것, 오직 나만의 길을 찾아가지 못하고 남들과 똑같은 모양으로 살아가게끔 사회가 조성이 되어가고 있으니 나의 강렬한 이 충동을 오직 나만의 방식으로 승화시켜낼 길을 찾지 못하고 그저 충동적인 쾌락 추구나 충동적인 오락같은데에 자신의 정력을 낭비해버리고 만다.

인간의 개성이 발전하는 정도에 비례하여 스스로 더욱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그에따라서 자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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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저사람 꼬라지 보기 싫어서 없애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때 적절한 처신 — 밀의 『자유론』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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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 Insight: 강한 혐오 감정이 생기더라도 타인의 삶이 직접적 해악을 끼치지 않는 한 제거하거나 강제 교정하려는 행동은 자유주의 원칙에 위배되며, 가장 정당한 대응은 비판·거리두기·무시 수준에 머무르고 타인의 자기결정을 허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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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들로부터 혐오받으며 사는것도 그 사람이 선택한 길. 남을 해치는 수준이 아니면 그냥 내버려두는것이 최선"

— 존 스튜어트 밀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서 혹은 지나다니는 길목에서라도 별스럽게 싫은 느낌이 나는 어떤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

그 사람이 무슨짓을 하든 내가 상관하지 않을 수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내가 그것때문에 볼때마다 불편하다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가볍게는 스트레스를 조금 받는 정도이겠지만 심해질 경우 상대를 없애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의 혐오가 생겨나기도 한다.

법철학자 누스바움이 지적했듯이 혐오라는 감정은 상대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게 만들어 그를 향한 가해행위를 정당하고 통쾌한 것으로 느껴지게 만든다고 하였다.

묻지마 폭행, 묻지마 살인등의 가해자들은 자신의 가해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갖기보다는 정당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았음을 볼때 그러한 경우는 나의 행동과 상대의 행동 사이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힘이 무너졌을때 그러한 일이 발생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의 감정만 소중하고 상대를 동등한 존재로 생각하지 못하고 하찮게 여기게 될 때 객관적 판단의 힘이 무너지게 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자유를 누리는 자유주의 사회를 존속시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사람이 자기가 결정한대로 그대로 살게 할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밀은 결론적으로 내가 싫다고 느껴지는 사람에게 불쾌한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표현하거나 꼴보기 싫다는 이유로 그를 피하고 외면할수는 있어도 그러한 이유로 상대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내 기준에서 저 사람 자체나 그가 하는짓이 보기 싫다거나 다른 사람에게도 불쾌한 감정을 주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를 사회의 적으로 간주하여 분노나 원한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왕따나 집단린치를 가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가해의 이유를 물어보면 집단린치를 당할 만한 핑계거리들이 있다. 거짓말을 했다거나, 약속을 안지켰거나, 도둑질을 했다거나, 병신짓만 골라서 한다거나, 이유없이 그냥 싫다는 이유도…

만약 정말 합당한 이유 때문에 그 상대를 교정시키기 위해서 왕따나 집단린치를 하는 것이라면 그 사람이 아닌 그와 비슷한 언행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똑같은 반응으로 대해야 한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죽마고우나 나를 가장 아껴주는 사랑하는 가족이라 할지라도 똑같은 모습이 보인다면 내가 혐오하는 그 사람에게 대응했던 그 행동을 똑같이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가?

설령 그렇게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상대를 조련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를 상처입히기 전에 그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무엇이 잘못되었고 그렇게 계속 행동하게 되면 어떠한 결과가 나타날지를 그가 받아들일 수 있게 알려주고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주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공리주의자인 밀의 시각에서는 정의로운 사람은 사회전체 행복의 총량을 고려할 것이기에 내가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그 사람이 더 나은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 방향성을 제시해줄 뿐, 그 상대가 공동체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아예 없애고 싶어하거나 그를 상처주고 불행하게 만들어 사회전체 행복의 총량을 감소시키는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설령 그에게 그러한 애정있는 조언이나 대안을 제시해 주지는 못할지라도 그의 행동이 타인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닌 한 그가 자신이 결정한 삶의 방식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기라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그 사람에게 정당한 수준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가혹한 태도는 그냥 그 사람 멋대로 살게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보기에 저것은 잘못되었다 싶더라도 각자는 자신의 행복에 그 누구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선택한 그 방식이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 믿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가 자기 결정대로 살아가는 그 행태가 잘못된 것이어서 결국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주게 된다면 그는 어차피 스스로 고통받게 되는 결과를 감수해야만 하고 자신의 더 나은 행복을 위해 스스로 잘못을 교정해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과오를 고쳐내지 못하고 절제없는 방탕한 생활로 자기만의 이기적인 쾌락만 좇으며 타인에게 불쾌함을 주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현재 다른 사람들로부터 경멸당하고 미움을 받는 댓가를 충분히 치르고 있을 것이며 그러한 혐오를 받으며 사는 것 또한 그 사람이 선택한 길이므로 밀은 냉정하게 그의 행위가 타인을 해치는 수준이 아니라면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자기관리와 사람관계에 대한 많은 책을 낸 에리히 프롬도 상대를 내 의지나 내 편견으로 억지로 바꾸려보려고 강제하는 것은 상대의 생명력을 무시하는 네크로필적 성향이라 비판하였고, 상대가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성장하든 그것은 상대의 개성과 자기결정에 따른 것이므로 최대한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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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SPC 기업 불매운동 나도 동참해야 할까?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의 시각에서 본 오지랖의 정도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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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 Insight: 기업 불매운동과 같은 사회적 간섭은 공공 피해를 교정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강제적 여론 압력으로 변질될 경우 개인 자유를 침해할 수 있으므로, 참여 여부는 집단 분위기가 아니라 각 개인의 자율적 판단과 책임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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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어느 한 구성원의 행동의 자유에 간섭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유일한 목적은 자기보호(Self-protection)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Harm)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문명사회의 어느 구성원에게 그의 의지에 반해서 권력이 행사되는 것도 정당하다. 하지만 이 목적을 제외하고는, 그 자신의 물리적 또는 도덕적인 선(Good)을 위한다는 명목으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SPC 평택 제빵공장 사망 사고 대처 방식과 논란 이후 사후 처리를 하는 모습을 통해 불의를 느낀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이래서 사후 처리가 정말 중요한 것이다. 사건 사고가 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인간이 완벽할 수가 없으니 사건 사고를 완벽하게 막을 수가 없다.

결국 사후 처리가 중요해지는데 기업의 진가는 바로 이 사후 처리에서 판가름 된다. A/S는 최대한 빠르게 즉각적으로, 만족할때까지가 정답이다. 평상시에 일 잘해봤자 문제가 발생했을때 그 사후 처리가 엉망이면 이건 무능력한 것으로 봐야 한다.

오긍의 『정관정요』에서도 일의 마무리와 끝맺음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고 하였다. 그만큼 사후 처리를 확실하게 뒷말 나오지 않게 마무리하지 못한다면 그 기업은 굳이 불매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그 영광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기업뿐만이 아니라 정부든 개인이든 모든 갈등상황과 사건 사고에서는 즉각적이고 인색하지 않게 사후처리가 이루어져야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다. 그러나 또 너무 만족스럽게 사후처리가 이루어지면 그것을 남용하는 사기 문제가 발생하게 되니 그 적정선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기업 총수의 몰상식한 행위나 갑질의 횡포 등은 사실 역지사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되는 문제이다.

데이비드 흄이 『인성론』에서 관계의 거리감에 따라 역지사지 정도가 달라진다고 지적하였고, 그것은 거리감이 멀수록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고 역지사지도 안된다는 뜻이다.

대기업의 최종 보스들은 노동자들이나 소비자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렇게 너무 멀리 떨어진 관계들은 서로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기업의 적절하지 못한 사후 처리에 피해를 입고 대기업의 횡포에 대항하려는 사람들은 불매운동을 집단적으로 일으키고 사람들을 선동해서 동참시키는 소란스러운 방법이 아니고서는 대기업 총수들에게 소비자나 노동자의 마음을 헤아리게 만들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 또한 주의해야 할 것은 무늬만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기업을 자기 입맛대로 조련하고 삥뜯기 위해서 국민들을 선동하여 문제를 확대시켜 불매운동을 뒤에서 조작하기도 하고, 경쟁 기업이 자신의 이윤을 확대시킬 목적으로 불매운동에 부채질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불매운동의 확대로 인한 이익의 흐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연 기업을 대상으로 일으키는 불매운동에 동참하는것이 정당한것인지 그냥 가만히 있는것이 맞는 것인지 가치판단을 하기 어렵다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참고해 볼 수 있겠다.

밀의 『자유론』 “제4장 개인을 지배하는 사회권위의 한계에 관하여” 이 부분에서 사회적으로 어떠한 문제가 발생되었을때나 어떤사람이 끼치는 해악에 대해 개인들이 어느정도까지 오지랖을 부려야 할지에 대해서 밀의 생각을 알려주고 있다.

밀은 법의 제재를 벗어난 범위에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다른사람의 행복에 대한 정당하고 적절한 고려없이 이루어지는 개인적 행위 (역지사지 안돼서 나타나는 배려없는 몰상식한 행위로 사회에 피해를 끼치는 일)를 한 사람은 법으로 제재를 시키지 못한다면 여론에 의해서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인즉슨, 사회적인 피해를 끼쳐 사람들의 뭇매를 맞게 하는 것으로 교정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여론을 선동해서 집단 불매운동을 일으키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뜻이다.

다만, 이러한 사회적 간섭행위는 그것을 통해 사회 전체의 복지가 증진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가능하다고 제한을 둔다.

그 기업의 행위가 그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칠 뿐 다른 사람의 이익에는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 경우나,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참견하기를 원하지 않아 그 이해관계를 간섭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한 사회적 권위를 행사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실 인간은 내심 오직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살아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삶의 행위에 서로 상관할 필요가 없으며 자기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일에 관여해서는 안된다. 본인 당사자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어 나 자신의 이익에 손해를 끼친 경우가 아니고서는 다른 사람일에 함부로 개입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인 일에 무관심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보다 정의로운 세상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그리고 더 나은 복리후생을 위하여 그것을 위한 정의로운 선행은 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이익을 증진시켜줄 것이고 그러한 “사심없는 노력"은 최대한 많을수록 좋다.

다만 어떤 누구도 그 일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타인에게 불매운동을 함께해야 된다고 “강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정의를 위해 불매운동을 해야된다는 입장이나 남이사 어쩌든 내가 원하는대로 행동하겠다는 입장이나 각자 자기가 생각하는 정의대로 다른 사람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설득하거나 싸우거나 심지어 강요(강제가 아닌 강요)할수도 있다. 그렇게 자신의 입장을 가르치려 들거나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각자 판단에 따라 자발적이고 개인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지 남의 눈치를 보고 내 의지와는 반대로 주관없이 분위기에 휩쓸려 좀비처럼 무조건 따라가는식이여서는 안된다.

그 과정에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치열한 토론과 의견 다툼이 발생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아주 당연한 현상이고, 각자는 그렇게 자기의 주관대로 소신을 표명하고 시비를 걸고 결정할 권리가 있다. 상대방이 상대방 소신껏 어떠한 최종결정을 했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내가 보기에 아무리 틀린것 같아보여도 그 결정을 번복하게 만들기 위해 강제해서는 안된다.

집단 여론 형성이나 불매운동과 같은 사회적 간섭은 일반적인 추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오직 본인 그 자신하고 관련된 일이 아니고서는 추정에 의해서 사건을 판단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것은 확실한 팩트는 정확히 알 수가 없고 그저 추측이나 감정적으로 추정이 이루어지는 대로 휩쓸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내가 직접적으로 관련한 일이 아니고서야 그런 사회적 문제에 대한 추정은 (정확히 판단한 것일 수도 있지만) 완전히 반대로 잘못된 추정일수도 있다. 또한 비록 올바른 추정이라고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우리는 SPC 기업 관리자의 노동자를 경시하는 듯한 무책임해 보이는 사후처리를 보면서 불매운동을 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겠지만, 불매운동이 확산되면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대상은 그 잘못을 저지른 SPC 기업 관리자들이 아니라 그와 연계된 죄없고 선량한 소상인들만 고통을 받게 된다.

물론 한 사람이 죽어갈때의 고통과 그 가족들이 평생 감당해야 할 슬픔이란 살아있는 사람들의 그 어떤 고통에도 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정의롭다고 생각한 그 행동 때문에 죄 없는 또 다른 소상인들과 노동자를 죽게 만드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것도 한편으로는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인간사의 영역은 복잡 미묘하게 얽히고설켜있어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여론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아닌 각자의 특수성을 감안하여야 하기 때문에 내가 직접 관계하지 않은 외부의 사건을 함부로 옳다 그르다를 판단할 수가 없다.

물론 밀은 기업의 상업행위는 전체사회의 이익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의 모든 행위는 자율권을 존중해 줬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못하고,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이기적인 사기행위를 하거나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예방조치를 소홀히 하는 등의 고용주의 무책임한 행위가 발생된다면 사회적 간섭이 가능하고 그를 비난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기업의 이기심 때문에 약자의 고통을 본체만체하는 행위들은 당연히 도덕적인 비난을 받아야 하고 일이 중대한 경우에는 도덕적 보복과 형벌까지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행동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면 그것은 어떠한 범죄 못지않게 사회 전체의 행복의 양을 감소시킬 것이기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러한 나쁜 실례를 자주 보이는 것 자체가 세상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행위에 영향을 받아 그러한 악행을 똑같이 저질러도 된다거나 그런식으로 기업의 이윤을 위해 잘못된 영업방식과 잘못된 사후처리 방식을 따라해도 된다는 인식을 갖게 될 무지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비난하고 규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적 간섭은 자칫 기업을 조련질해서 사적인 이익을 보려는 어떤 집단의 숨겨진 이익을 위해 악용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여론을 선동하기 유리한 수단들을 개개인이 획득하고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나 노동자가 무조건적으로 약자인 세상이 아니다. 얼마든지 여론을 결집시켜 국가권력을 무너뜨릴수 있을 정도로 큰 힘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한국의 시위세력 이력들을 통해 증명되었다고 본다.

그렇게 이루어지는 사회적 간섭이 정말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힘을 발휘하여 사심없이 공정하게 정부나 기업을 자극할 수 있다면야 세상은 곧장 바로 잡히게 될 것이다.

요즘은 한 사람의 사소한 행동 하나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권력을 다스리는 힘은 위정자들만 가져야 할 능력이 아니라 개개인 국민 모두가 지녀야 할 능력이 되었다.

밀은 그래서 “자기 스스로 규율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기 스스로 규율하고 절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유를 누릴 수 있고 각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선에서 나의 자유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나의 자유를 충분히 누릴수 있게 하는 것은 곧 권력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나의 것을 최대한 맘껏 누리기 위해서는 서로 상대의 것을 침해하지 않기 위한 자기 규율적 삶의 태도가 중요해진다.

자기 스스로 절제하는 힘을 갖춰야만이 역지사지를 키워낼 수 있고 그래야만 자신이 권세가 있다고 다른 사람을 가볍게 여기는 몰상식한 처신을 하지 않게 된다.

밀의 기준대로 결론을 내리자면 기업의 횡포에 대해서 불매운동에 동참해야 되는가에 대한 문제는 SPC 기업의 몰상식한 행태에 대해 확인된 팩트에 대해서는 마땅히 여론의 뭇매를 맞도록 비난해도 되고, 불매운동 역시 해도되고 안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모든 최종 결정은 각자의 자유로운 자기 결정에 따른 것이어야만 하고 자기 주관대로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서는 서로 존중해줘야 한다.

물론 각자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싸우고 비난해도 상관은 없지만,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자유시민으로서 자격을 갖추려면 그 어떤 결정도 나의 소신에 따른 것이어야지 남의 눈치를 보면서 분위기에 휩쓸려서 내 주관없이 행동해서는 안된다.

밀은 그런 사람들에 대하여 자신의 자유를 지켜내지 못하고 전제정부 치하에 굴종당할 노예들만이 그러할 뿐이고 그런자들은 자유주의 국가의 자유를 누릴 자격도 자신의 자유를 지킬 능력도 없다고 하였다.

by Shadow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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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토론의 고수 되는법: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알려주는 토론 잘하는법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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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Display Name: Notes & Sparks
Reasoning Type: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Core Insight: 강한 토론 능력은 자신의 주장만이 아니라 반대 의견을 철저히 분석하고 극단적 상황까지 검증하며 제3자적 시각에서 논리를 수정하는 습관을 통해 형성되며, 이러한 과정이 개인 판단의 확신과 공공 토론의 질을 동시에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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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진리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우리는 인위적으로라도 반대 의견을 만들어내야 한다. 마치 가장 완고한 적수가 내세울 법한 가장 강력한 논거들을 스스로 상상해보고, 그것에 답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그 진리는 살아있는 지식이 된다."

— 존 스튜어트 밀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다수 의견의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러한 소신 발언을 왜 해야 하며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책을 읽다가 토론을 잘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도움이 되겠다 싶어 따로 정리해 보았다.

밀은 현대의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 대한 신념이 부족하고 회의(의심을 품는 마음, 완벽하게 진리로 증명될 때까지 판단을 보류하는 것, 권위자의 말이라고 무조건 긍정하지 않고 일단 부정적으로 의심하고 검토해보는것)를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밀은 자신의 주장에 확신을 얻고 강하게 소신을 말할 수 있으려면 내 생각과 다른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과 비교해 보면서 자신의 의견이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모든 이가 수긍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타당하게) 계속 수정해나가면서 완성해 나가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맞부딪쳐 비교해나가는 그러한 습관은 자기 의견에 따라 소신을 피력해야 할 때 줏대 없이 주저하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자기 의견에 대한 정당한 신뢰감을 얻도록 해주는 유일하고 확실한 근거가 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모든 의견을 모조리 파악하고 있으며 그 반대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의견이 그들에게도 합당한 것이 될 수 있을 때까지 논리를 교정하고 또 교정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의견을 향한 비판과 난관을 피하기보다는 오히려 정면으로 맞섰고 자신의 의견에 대한 여러 관점에서 제기된 문제점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반대자들에게도 수긍이 되는 것이 될 수 있도록 설득을 해나갔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관점을 거치지 않고 자기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랑만 상대했던 사람들의 판단보다 자신의 판단이 더 우월하고 믿을만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자유토론의 논의들은 어떠한 주제이든지 극단으로 밀여 붙여 끝까지 집요하게 파고들 필요가 있다. 극단적으로 발전된 모습이 옳지 않다면 그것은 결국 어떠한 경우에도 옳지 않게 된다. 만약 그것이 진리라면 어떤 극단적 상황에서도 적용 가능한 것이 될 것이다.

인간의 지성과 판단력을 키워낼 토론의 주제는 의견 차이가 다양하게 갈릴 수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좋고 각자가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싸우는 대립되는 논리들을 비교하고 대조해야만이 진리에 가까운 것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들 중심으로 수집하고 상대에게 유리한 증거들은 거의 배제하는 식으로 처리하는데 그런 식으로 토론을 준비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이길 수 있는 논거를 준비할 수가 없다.

고대의 위대한 웅변가였던 키케로는 자신의 주장만큼이나 상대의 주장들(반론: 상대가 나를 공격할 만한 내용들)을 열성적으로 연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므로 진리에 도달하려고 하는 어떤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키케로가 성공적으로 변론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들을 본 받아야 한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자기 자신의 주장만을 알고 있는 사람은 사실 그 문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반대자의 의견을 파악할 때는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의견이 가장 정당하고 옳다고 믿고 있는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

반대자에게 유리한 입장의 내용들을 철저히 분석하고 나에게 불리한 입장의 내용들에 직면해 보아 그것을 처리해야만 하는 온갖 난관의 힘을 미리 느껴보아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런 난관(반론)을 극복하는 진리는 결코 소유할 수 없을 것이다.

서로 반대되는 두 의견에 공평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각 의견의 근거들보다 더욱 객관적이고 분명하게 양쪽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제3자적 감각을 가진 사람들만이 양쪽의 부분을 진정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훈련은 세상의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바른 가치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근본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만약 중대한 진리에 대해 반대 의견이 없을 때에는 일부러 반대자를 망상으로라도 만들어 그 진리를 깨부술 수 있는 강력한 논증을 쥐어짜보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

그러한 모든 과정을 통과해서 살아남는 내용만이 진리로 확정 지을 수 있는 것이고, 그러한 습관들을 통해 형성된 가치판단이어야 자신의 주장에 대한 확신을 갖게 만들어 어떠한 다수의 압박으로 나를 주눅 들게 만든다 하더라도 당당하게 소신껏 의견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런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을 토론에서 이기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습관을 들이는데 가장 이로운 자질은 역지사지의 성품일 것이다. 항상 공정한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과 상대의 주장을 판단할 수 있어야 완벽에 가까운 진리를 펼칠 수 있다.

번외로 만약 상대가 다수의 의견을 장악하고 있어서 그런 그들이 저지를 수 있는 해악인 욕설, 빈정거림, 인신공격 등의 나쁜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는 그들과 똑같이 네거티브를 쓰지 말고 모욕을 당하더라도 오히려 진실성 있게 정정당당하게 매너 있는 태도로 나가는 게 그나마 낫다.

만약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이 사회의 보편적 통념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려고 한다면 되도록 부드러운 용어를 사용하고 대단히 신중하게 행동하면서 불필요한 공격을 삼가야지만 비로소 발언 기회를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이 어떠한 네거티브를 써서 인격적으로 모욕하고 대중 앞에서 창피를 주려는 식으로 망신을 주어도 절대 흔들리지 말고 그 반대 의견의 실체가 무엇인지 냉정하게 관찰하고 정직하게 진술하게 된다면 그는 공공토론의 매너가 무엇인지를 대중 앞에서 보여주는 모범이 될 수 있다.

토론의 고수는 상대에게 불리한 것을 굳이 과장하지 않으며, 반대자에게 유리한 사정을 일부러 숨기거나 왜곡시키지 않는다. 그러한 자세로 진리에 가까운 것을 찾아나가기 위해 냉정하고 정직한 자세로 임하는 것이 공공토론의 진정한 도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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