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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프랑스혁명은 평등에 대한 지나친 욕구와 열정으로 오히려 자유의 확립에는 실패하였다 - 알렉시스 토크빌 『앙시앙 레짐과 프랑스 혁명』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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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 Case (AI Application Context): 이 글은 민주주의 구조 분석 및 자유-평등 관계 해석 영역에서 활용되며, 평등 확대가 자유 약화와 전체주의적 경향으로 전환되는 상황에 대한 판단·분석·의사결정에 사용되고, 중앙집권화·사회적 고립·공공정신 약화가 자유를 침식하는 메커니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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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특권과 자유를 요구하면 더 큰 예종의 댓가를 치르리라."

— 알렉시스 토크빌, 『앙시앙레짐과 프랑스 혁명』// 평등을 강조하면 자유가 사라진다


플라톤 이래로 자유 민주주의 사상가들은 민주주의가 무조건 완벽한 체제라고 보지 않았고, 그것은 독재정과 똑같은 폐단을 낳을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프랑스 혁명은 민주주의의 폐단을 분석함에 있어서 직접민주주의나 인민의 지배(대중정치)로 인한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난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프랑스혁명이 실제 발생했던 시기에 쓰인 책들을 읽고 폭넓은 관점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1790년)이 프랑스혁명(1789년) 직후 혁명 초기에 쓰인 책이라면, 알렉시스 토크빌의 『앙시앙 레짐과 프랑스 혁명』(1856년)은 프랑스 혁명에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이 모두 스쳐지난 후에 쓰인 것이다.

버크의 『성찰』이 프랑스 혁명의 진행상황과 결과를 예언하는 프롤로그의 일종이었다면 토크빌의 『앙시앙레짐과 프랑스혁명』은 대혁명을 총정리하고 교훈을 알려주는 에필로그인 셈이다.

(보수주의 사상의 가치와 논리가 담긴 보수주의의 경전/프랑스혁명 비판 https://shadowj.org/power-system/burke-french-revolution/)

토크빌은 프랑스의 정치학자이자 역사가로서 프랑스 혁명을 몸소 경험했으며, 그의 저서는 그 당시의 실제 공공기록물들을 통해 실증적으로 프랑스혁명을 분석함으로써 혁명을 이론이나 당위론의 측면에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측면에서 그 실체를 파악하였다.

토크빌은 프랑스 혁명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혁명 이전의 체제(구체제:앙시앙레짐)와 비교분석해야 대혁명의 진짜 원인을 밝혀낼 수 있다고 보았다.

혁명이란 압제가 약화되어가는 순간에 생겨나는 것이다

혁명이란 반드시 사태가 악화되는 과정에서만 발생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압제적인 정부 아래에서도 마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이 별 불평없이 잘 참아내던 사람들이 그 압력이 완화되는 순간 정부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한다.

(폭동은 권력이 약해질때 나타난다 https://shadowj.org/power-system/weak-power-revolt/)

프랑스 혁명이 엄청난 학정과 핍박에 의해 발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 어느때보다 풍요롭고 자유로웠던 시점에 가장 자유로웠던 곳에서 발생되었다고 토크빌은 주장한다.

프랑스 혁명직전 1780년즈음에 프랑스가 쇠퇴하고 있다고 주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프랑스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시기였다는 뜻이다.

프랑스 혁명 이전의 앙시앙레짐(구체제) 상황: 인민은 이미 자유롭고 풍족한 상황이었다

물론 앙시앙레짐에서 나타나는 여러가지 문제점(과도한 토목공사로 인한 과세요구, 십일조 요구, 공무원 비리 등)이 있었지만 그 예전 시기와 비교해 보면 그러한 문제점들이 심해진 것이 아니라 조금씩 교정되어가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프랑스 당시의 공공기록과 조세기록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은 인민들은 프랑스 혁명 이전에 이미 자유로운 토지 소유농이 되었고, 영주귀족들의 지배로부터 진작 벗어나 있었다는 것이다.

왕은 기존 귀족들과 영주들의 세력을 줄이기 위해 부르주아 평민들에게는 매관매직으로 그들의 세력을 무분별하게 키워주었고, 농민들에게는 본래 영주들이 소유하고 있었던 토지들을 소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귀족들의 권한과 권리는 점차 줄어들고 아무힘도 쓰지 못하고 무늬만 귀족인 그런 상황이었다.

교구 내의 모든 관리들도 이미 농민들에 의해 직접 선출되었고

왕권마저 법적지위상으로만 절대권력자였을뿐 여론의 눈치를 보며 여론에 휩쓸리고 있었던 분위기속에 있었다.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은 권력자들이 다른 권력자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국민들에게 이간질하였던 것 때문

농민들은 자신의 재산을 소유한 자유인으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이나 십일조등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유가 커지고 자신의 소유가 늘어날수록 그들은 더 많은 소유물을 얻기 위해 욕심을 갖게 되었고 그러한 상황에서 국가의 과도한 토목공사때문에 거둬들이는 세금에 불만을 갖게 된다.

토크빌은 그 당시 만약 농민들이 토지소유농이 아닌 진짜 억압받고 핍박받던 상황이었다면 국가에서 토지소유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든 십일조를 부과하든 아무 관심이 없었을 것이라 반문한다.

그당시 조세의 부담을 평민들이 대부분 짊어지고 귀족과 성직자는 면세의 혜택이 있었다는 것을 평민을 핍박한 증거로 제시하는 연구자들도 있는데, 토크빌의 공공문서 기록물을 통해 밝혀진 바 그당시 프랑스국민의 5%미만에 속해있었던 귀족들은 이미 궁핍할대로 궁핍해져 있었을뿐만 아니라 평민들을 핍박할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부르주아 평민계층들이 이미 프랑스의 정치와 경제를 장악하던 시점이었고 프랑스의 토지도 농민들이 소유하여 영주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급자족하던 시기였기때문에 평민들이 프랑스 조세의 대부분을 짊어졌다는 내용만으로 그들을 부당하게 핍박하였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어쨌든 그당시 프랑스의 물가를 급등시켜 민중들의 불만을 들끓게 했던 인플레이션은 발생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프랑스 혁명을 정확히 분석하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을 조장한 경제적 내막을 파악해야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을 듯 보인다. 프랑스 혁명이 끝난뒤 프랑스의 왕, 귀족, 성직자, 평민 그 어느 누구도 이득을 본 이가 없었고 모두다 경제적으로 손해만 본 상황인데 그렇다면 역으로 분명 프랑스 전체를 뽑아먹을 정도의 경제적 이득을 본 누군가가 존재해야만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정확하게 드러난 내용들을 찾기가 어렵고 연구자들의 책에서는 각자가 부분적으로만 보고 있을 뿐이다. 국가 구성원들의 탐욕을 조장하여 허황된 것에 무리한 투자를 하게 만들고, 인플레이션이 발생되고, 그것으로 민생이 어려워지고 인민들의 불만을 가중시켜 폭동으로 이어지게 만든 뒤, 그러한 혼란을 제압하기 위해 국민의 자유를 빼앗는 강력한 독재가 필요하게 되는 등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의 숨겨진 원인을 밝혀내야 전세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흐름들을 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채 품위유지만 하고 있던 귀족과 성직자들은 아무런 사회적 책임도 지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민들이 보기에는 그들에 대한 혐오감이 커져갈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권력자들 중에는 왕,귀족,성직자들의 비리를 농민들에게 공개하며 이간질하고 선동하던 세력들이 있었기 때문에 농민들은 자신의 불만을 누구를 향해 터트려야 할지 알게 되었고 또한 그들이 수적으로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대담해졌다.

프랑스 혁명 직전에 전조현상이 한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농민들이 귀족들의 사유지에 무단침입하여 그들의 사냥물들을 모조리 죽인 사건이다. 귀족들의 사냥놀이는 귀족들만의 특권과 같은 것이었는데, 인민들이 귀족들의 사유지에 쳐들어가서 토끼나 비둘기같은 사냥감들을 죄다 죽여버리는 일들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그 당시 귀족들은 인민들의 선 넘은 행동들에 적극대응하지 않았고, 그 사건을 통해 인민들이 귀족들을 굴복시킬 힘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미리 확인했던 것으로 토크빌은 분석했다.

프랑스 혁명을 선동한 은막의 조직 ‘참사회’가 설계한 대로 프랑스 정치체제가 개조되고 인민들은 희생당한다.

버크의 『성찰』에서 프랑스혁명을 찬양하는 프라이스 박사를 비판하는 내용에서 잠깐 언급되었고, 토크빌도 동일하게 언급하는 세력이 있었다. 각자 그들을 부르는 이름은 달랐지만 하는 행위는 비슷한 것으로 보이고 만약 이들이 한 몸통이라면 그들은 1770년 전후로 이러한 은막의 활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버크의 책에서는 프라이스 박사를 선동시킨 ‘혁명협회’가 등장하는데 버크는 “그들은 세상을 전복시키려는 음모론자로 각 국가의 정치경제에 혼란을 주고 영국의 명예혁명을 왜곡시키면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토크빌의 책에서는 “모든 것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에도 역사가들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그 존재가 가려진 채로 필요 이상의 권력을 과시하는 법이 없었다"는 ‘국왕참사회’의 세력들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프랑스 정치체제를 재구성하는 물밑작업을 하고 인민들을 선동해온 것으로 나와있다.

국왕참사회의 영향력들이 드문드문 나와있는데 당시 프랑스 사회는 국왕참사회의 허가가 없다면 대중집회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상거래도 할 수 없었고, 투표나 자기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자유도 없었다.

사소한 것도 참사회의 판결이 필요했고 주민들은 선출의 자유는 있었지만 후보자들은 그들이 이미 지명한 후보에 한정해서만 뽑을 수 있었다. 겉으로 보면 절차적 민주주의 방식은 따른 것이다.

사사로운 개인의 소송을 금지함으로써 인민들이 정부에 항의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설령 항의한다해도 2~3년을 기다리게 만들게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또한 인민들에게 권력자들의 비리와 폐단이 얼마나 있는지를 고자질하는 식으로 그들을 선동해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게 하여 귀족 영주들과 성직자들의 소유물들을 모조리 빼앗도록 해놓았다.

또한 정치갈등을 심화시켜 사법이 정치에 개입할 수 밖에 없도록 정치의 사법화 현상도 나타났다.

이러한 식으로 프랑스의 행정 입법 사법을 장악하고 중앙권력을 강화시켜 모든 것을 통제하였다.

인민들에게 법에 의한 해결을 보지 못하게 만든 탓인지 인민들은 법치를 중요시하지 않았다. 법에 대한 존중을 보이지 않았던 인민들은 그저 감정적으로 판단하고 자극받았을 뿐이기 때문에 그러한 인민들을 제압할 방법 또한 법과 원칙이 아닌 폭력과 전제여야만 했다.

평등해질수록 서로에게 무관심해지고 고립되고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인민들

그렇게 중앙집권화가 강조되고 전능화되면서 각 지방의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삶이 오래전에 소멸되었다.

귀족들은 모조리 파산되어갔고 더 이상 그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할 이유도 능력도 되지 않았다.

농민들은 토지소유권이 보장되어 사적 재산을 축적시킴에 따라 농민들과 부르주아의 차이가 생겨나지 않게 되었고, 부르주아는 매관매직으로 작위와 관직을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부르주아와 귀족 간의 차이도 없어져갔다.

모두가 평등한 사람들로 똑같이 되어갔지만 기묘하게도 평등해질수록 오히려 각자가 계급적 차별을 두기 위해 서로를 가까이하기 싫어했으며 점점 서로의 존재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지극히 자신의 이익만 바라보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변해갔다.

토크빌은 사람들이 다똑같은 평등속에서 차별화를 추구하기 위해 도리어 서로서로 멀어지려고 하는 것이 인간을 고립시키고 자유를 빼앗게 되었다고 말한다.

한나 아렌트와 에리히 프롬은 인간을 다 똑같이 만들어 그들을 고립시키게 되면 독재하기 용이한 도구들로 전락된다고 주장했다.

서로 간의 유대가 사라진 세상: 자유가 사라지게 되는 세상이 된다

토크빌은 서로 간의 유대가 없이 개인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현상, 공익을 위한 마음이 전혀 없는 이기적인 개인들이 된 현상을 우려하였고 이것이 곧 자유를 사라지게 만든 것이라고 보았다.

『자유론』을 쓴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은 토크빌과 동시대의 사상가였는데, 밀의 『대의정부론』에서 공익에 헌신하는 마음은 민주주의가 자유의 속성을 갖추게 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공익을 위하는 이타심은 사람들이 지식을 쌓아가고 공부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소명을 찾게됨으로써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바른 지식에서 커져나가게 되는 공익에 대한 마음은 자유민주주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힘없는 한명이 다수랑 맞짱떠도 이길수 있는 세상이어야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https://shadowj.org/power-system/skilled-democracy-mill/)

(이타적 공익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 특성 https://shadowj.org/notes-on-living/knowledge-to-public-spirit/)

이와 비슷한 얘기로 토크빌의 표현에서는 일종의 “귀족정신” 과 같이 지성과 덕성을 갖춘 중간계층의 역할이 사회를 분열되지 않게 만들고 계급 간 단절을 이어주는 것이라 보았다. 이것은 현대적 관점으로 해석하면 중산계층이 사회를 분열되지 않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으로 볼수 있다. 실제로 사회갈등이 심하고 사회분열로 독재가 되는 국가들의 전조증상이 “중산층 소멸, 빈부격차 극대화"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국민소득 높아도 왜 민주화되지 못하고 있나 https://shadowj.org/power-system/illiberal-democracy/)

토크빌은 그래서 프랑스의 지방자치제라 할 수 있었던 영주들의 귀족 정신이 지역공동체의 자치적 자유를 지켜내고 그것이 프랑스를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던 것으로 분석한다.

프랑스 혁명은 구체제에 나타났던 폐단들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지만 구체제의 긍정적인 좋은 면들까지 모조리 제거함으로써 오히려 구체제보다 더 열악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거기에 더해 중앙집권적 권력만 강해짐으로써 프랑스 인민들의 자유와 풍요를 빼앗기는 현상이 더해지게 된 것이다.

프랑스혁명은 절대왕정과 봉건 귀족에 맞서 자유의 원리를 내세움으로써 인민들에게 민주주의 의식을 고취시키고 주권자로서의 외양을 부여하면서 이러한 정치적 권력의 평등화를 사회적 평등화로 이어지게 하였다.

이러한 평등 정신으로 민주주의를 이루어내긴 했지만, 평등에 대한 집착을 가져오게 되어 개개인의 자유가 부정당하고 이로 인해 평등의 민주주의가 곧 전체주의로 나아가버리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의 교훈: 평등적 민주주의에 자유를 존속시키게 만들 방법을 찾는게 중요하다

토크빌은 버크와 달리 구체제를 옹호하고 수호하려 하기보다는 프랑스혁명의 결과들인 평등주의를 수용하면서도 민주주의가 전체주의로 나아가지 않고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는 방안을 추구하고자 한다.

토크빌은 평등과 자유 간에는 역설이 존재한다고 보았고, 민주주의가 평등을 강조할수록 자유는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역설은 현재의 민주주의가 해결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정치 현안인 만큼 자유와 평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곧 진정한 의미의 자유민주주의의 과제이다.

특히 현대 민주주의의 특징인 ‘국민 개개인들이 공공정신이 사라져가고 정치적 무관심이 켜져가는 현상’을 풀어낼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토크빌은 프랑스의 중앙집권화로 자유가 사라져가는 모습들을 통해 반대로 구조적으로 지방자치를 활성화하고 그들의 공익적 활동을 키워내게 된다면 자유를 보완시켜낼 수 있다고 보았다.

더불어 토크빌은 개인들에게 호소한다.

“우리시대의 어떤 국민도 조건이 평등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평등이 인간으로 하여금 노예상태와 자유, 지혜와 야만, 번영과 고통 중에서 어느길로 나아가게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

토크빌은 권력에 복종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다만 권력에 복종을 할 때 정통성이 결여되고 정당성을 의심받는 권력임에도 단지 자신의 이익에 해가 될까 두려운 마음에 양심을 저버리고 기꺼이 따르는 식으로 이익을 위해 권력에 무릎 꿇는 것은 비난받아야 마땅한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 바르지 않은 권력에 자발적으로 무릎 꿇게 된다면 자신의 작은 욕심 때문에 나의 자유 전체를 빼앗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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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법한 것을 단호하게 일망타진할 강력한 공권력은 권력자가 그 스스로에 대해 올바르고 정정당당하다는 자부심에서 발휘되는것"

— 기망과 거짓을 전략으로 삼는 좌파들은 양심없는 뻔뻔한 덕분에 모든걸 잔인하게 전복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식없고 양심없는 좌파를 일망타진하기 위해서 보수우파는 더더욱 옳은 편이어야 한다.


프랑스 혁명이 왜 저따구가 된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아서 실증적으로 연구한 책들을 더 읽어나가고 있는 중인데 한가지 느끼는 바가 있어서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참고: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 에드먼드 버크 관련글 https://shadowj.org/power-system/burke-french-revolution/)

프랑스 혁명세력들의 진짜 이유가 어쨌든 겉모양의 명분으로는 왕의 무능과 핍박으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에 처형시킨 것이다.

그러나 뭔가 딱 떨어지지 않는 느낌은 루이 16세의 성품은 선량하기 이를데 없다는 평이 많은데 무능은 그렇다 치더라도 인민들을 핍박할 만한 성품이 아닌데 왜 저렇게 처참한 죽음을 당해야만 했던 것일까?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와 공감 능력 부족을 탓한다 치더라도 한 나라의 왕비에 대해 인민들이 조롱하고 욕하는 이야기들이 널리 퍼져나갈 정도라면 그 자체로 인민들을 전혀 통제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는데 어디서 핍박받았단 것인가?

프랑스 혁명 이전 구체제였던 삼부회(성직자-귀족-제3신분)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던 제3신분(평민, 부르주아지)이 그들 자의적으로 삼부회를 폐지하도록 몰아가고 그들의 세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국민의회를 구성한 것을 루이16세가 군대를 몰아서 제압하려고 한 것이 인민들을 핍박한거라고?

아니, 국가의 헌정체제를 붕괴시키고 자기네 멋대로 듣도보도 못한 새로운 입법기구 만들어서 ‘이제 우리가 짱이니까 성직자나 귀족이나 다 우리말 들어’ 그런식으로 성직자와 귀족들을 압박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왕이 가만히 있으면 그야말로 무능 그 자체가 되는 것 아닌가?

알렉시스 토크빌의 『앙시앙레짐과 프랑스혁명』(1856년)에서 중요한 이야기가 나온다.

폭동과 반란과 불만은 공권력이 억압적일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공권력이 약해졌을때 발생되는것" 이라고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루이16세가 잔인하게 처단당한 이유는 강한 권력으로 인민들을 핍박해서가 아니라 권력이 약해서 만만했기 때문에 당한것이다.

분명, 프랑스 혁명은 절대왕정의 강한 왕권을 폭정의 핵심이라 지목하면서 이루어진 것인데, 왜 토크빌은 그 당시 왕의 권력이 만만해져서 그랬다고 본 것일까?

왕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필요한데, 예전에는 귀족들의 지적인 지원과 재정적 지원을 통해서 왕권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귀족들이 왕에게 돈으로 갑질을 하기 시작하다보니 왕 입장에서는 자존심도 너무 상하고 권위도 떨어지면서 왕의 권위를 회복하고자 절대왕정의 기치를 세우고자 한다.

그러나 이미 돈 없고 힘 떨어져가는 프랑스 왕실이 귀족의 도움 없이 절대왕정의 위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누군가의 재정적 지원이 절실해지는데, 그때 프랑스 왕실에서 생각해낸 방법이 돈 많은 평민 부르주아지들에게 돈을 받고 귀족 작위나 공직을 하사하게 된다.

한마디로 절대왕정의 위엄을 유지하기 위해 매관매직을 하게 되는 것인데, 돈으로 신분이나 권력을 사려고 하는 사람들이 정신 상태가 올바른 사람들이 있었겠나. 돈만 많은 부르주아지들은 능력도 안되면서 작위를 사거나 공직을 사서 명예를 얻었고, 왕은 비리를 저지르든 실력이 형편없든 돈만 많이 주면 아무에게라도 권력을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절대왕정 시대에 왕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옳지 않은 방식으로 돈과 권력을 추구하다보니 “진정한 올바른 권위"의 힘이 사라지면서 그 스스로가 인민들이나 다른 귀족들에게 떳떳하지 못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절대왕권을 추구하려던 그 모든 행위들 때문에 오히려 절대 권력을 맘대로 부리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된다.

인민들이 조금만 반항해도 제 발 저려서 제압 못하고 그냥 당할 수밖에 없게 되는 그런 상황들이 프랑스 혁명의 숨겨진 배경인 것이다.

물론 루이 15세의 연약한 이기주의와 루이 16세의 선량함이 왕권을 강하게 부리지 못하는데 한몫 한 점도 있을 것이다.

보통 강한 권력을 유지하려는 통치자들은 자신이 강한 권력을 부리는 만큼 그 내면에 공포심이라는 댓가를 치러야만 한다. 그 공포심은 권력의 정당성을 스스로 자부하지 못하는 만큼 커지게 된다.

이러한 공포심을 해소시킬 방법은 두 가지다. 내면의 공포를 이겨낼 만큼 정의로워지든가, 아니면 내면의 공포를 잊을만큼 더 공포스러운 것으로 덮어버리든가.

소련의 스탈린, 조선의 연산군, 프랑스 혁명시기의 로베스피에르는 절대권력을 휘두르는데 대한 공포심을 포악성으로 해소시킨 경우이다.

그러나 루이 15세와 루이 16세는 그러한 냉혹한 성격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단지 매관매직으로 왕권을 유지해야 하는 정당하지 못한 권력에 떳떳하지 못한 마음과 선천적인 연약함이 프랑스 혁명의 폭동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도록 작용했다.

이러한 부분을 대한민국 정치사에 빗대어 살펴보자면,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좌우갈등이 심한 상황속에서 대한민국을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강한 경찰권이 필요했는데, 그 당시에는 경찰 행정을 잘 아는 사람이란 친일파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대한민국 공권력의 기반을 조성하는데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일제강점기때 권력을 휘두르며 악명 높았던 사람들도 그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자격지심 탓인가 좌파 폭동이 일어났을 때마다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여 폭동을 방조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정식 <21세기에 다시보는 해방전후사>)

전두환 정권에 대해서도 그 당시 역사를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전두환 정권 때 운동권 세력의 시위가 강성으로 치닫고 민주화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토크빌의 시각을 기준으로 추측해 보면 그 당시의 전두환의 권력이 전땅크라는 악명만큼 강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전두환은 민주화 세력들을 전땅크의 악명만큼 말 그대로 밀어버리지 못했는가. 그것은 전두환 스스로 자신의 권력에 대한 정당성 문제 때문에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했을 것으로 본다. 물론 강력하게 대응한다의 기준은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전두환이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최강도의 대응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지극히 권력자 입장에서 바라볼 때, 강한 권력으로 위험요소들을 초장에 강하게 제압하기 위해서는 권력자 그 자신이 ‘올바른 권위자’로서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프랑스 혁명에 대한 토크빌의 시각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다.

물론 국민들 전체가 권력자의 올바른 권위를 인정해주는 정치 환경이라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통치하기에 좋겠지만, 정치사회는 늘 그 권력을 전복시키고 자신이 권력을 쟁취하려는 무리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국민 전체로부터 인정을 받기는 정말 힘든일이다. 억울하게 왜곡당하지만 않아도 행운이다.

점점 갈수록 정치사회는 복잡해지고 국가권력외의 언론과 여론 등의 사회적 권력은 점점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최고 권력자 그 자신이 자기 자신에 대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떳떳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정치환경을 다스리고 국민을 바르게 이끄는 것은 점점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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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보수주의 사상의 가치와 논리가 담긴 보수주의의 경전 (feat. 프랑스혁명 비판) - 에드먼드 버크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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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 독재 아래서 박해받는 자들은 인류의 동정심이라는 위안을 얻고, 지조를 지킨다는 명예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다수의 지배 아래서 해악을 입는 사람은 모든 위안을 박탈당한다. 그는 자기 종족 전체가 꾸민 음모에 압도되어, 전 인류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에드먼드 버크,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


프랑스혁명 전개 과정 개요

프랑스 혁명은 1789년 7월 시민들의 바스티유 습격사건으로 시작하여 1794년 7월에 테르미도르 반동(프랑스혁명 세력 처단)에 걸쳐 일어난 프랑스의 시민혁명이다. 직접민주주의 사상인 루소의 인민주권론이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일반 인민들로 구성된 국민공회가 설립되었고 그 국민공회의 급진파(자코뱅-로베스피에르)와 온건파(지롱드-테르미도르)가 혁명과정을 주도하였다.

예전에 알고 있었던 내용으로는 프랑스 혁명이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고 인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시킨 명예롭고 정의로운 자유 민주주의 혁명이라 배웠는데, 그 당시 사태를 직관했던 사상가들의 책을 직접 읽어보면 실상은 공포와 혼란의 도가니였음을 알게 된다.

혁명 초기 자코뱅 로베스피에르 정부는 공포정치로 국가를 다스리면서 민생을 더 악화시켰기 때문에 민중들의 분노가 다시 로베스피에르에게 쏟아져 그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됐던 길로틴에 똑같이 처형당하게 된다.(1794년 7월 테르미도르 반동)

그러나 로베스피에르를 전복한 테르미도르파가 집권을 해도 경제적 문제들이 해결되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되었고, 이에 또다시 구관이 명관이다는 식으로 아예 혁명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왕당파를 지지하던) 시민들이 무장봉기(방데미에르 13일 사건)를 일으키는데 이것을 진압하면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자코뱅으로 몰려 위기에 처해있던 27세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이다.(1795년 10월 5일)

프랑스 혁명이 애초에 왕과 기득권의 핍박과 불평등을 싹 쓸어버리고 그들만 향유하던 것들을 모조리 빼앗고 인민들끼리 지배하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이 되자고 혁명을 일으켰는데,

인민의 이름으로 권력을 한번 전복시켜보니 맘에 안들면 그냥 또 그렇게 무장 폭도가 되어 권력자를 처단시키면 되었기에 시민정부의 권력은 쿠데타에 쿠데타가 거듭되었다. 그러나 권력 전복이 거듭될수록 민생은 더 악화될 뿐이었고 인민들의 경제적 고통은 점점 심해지게 되었다.

역사가 지나고 보니 인민의 이름으로 자행된 프랑스 혁명이 국민에게 해를 끼친것이었구나 알게 되었지만, 프랑스 혁명 초기에 시민들이 무장봉기하여 바스티유를 습격을 하고 국민의회가 설립될때만 해도 전 세계의 많은 정치인과 사상가들이 프랑스 혁명을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며 찬양했었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헤겔, 영국의 토머스 페인, 미국의 제퍼슨파 등이 프랑스 혁명에 적극 동조했다.

프랑스 혁명의 문제점들을 통찰해 예언한 에드먼드 버크, 영국의 헌정체제를 지켜내고 보수주의 창시자가 되었다

전 세계가 프랑스혁명으로 기뻐하며 각자의 나라에 프랑스혁명을 본받고자 인민이 지배하는 체제로 변화의 물결을 이어나가려고 할 때,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혁명에 대해 팩폭을 하며 영국은 휩쓸리지 말고 헌정체제를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리고등법원의 드퐁은 1789년 11월 프랑스 혁명의 국민의회를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버크의 견해를 묻는 편지를 보냈는데, 그것에 대한 답장 내용이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1790년) 이 책 전체이다.

이 책의 출간 시기는 1790년 11월로 프랑스 혁명 초기 1년의 사태만으로 프랑스 혁명의 원리를 밝혀내고 그것이 오류이며 위험하다고 비판하였는데, 그 당시만 해도 프랑스 혁명 찬양론이 다수를 이룰때라 버크의 경고는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전과정에서 나타난 폭정의 파괴적 측면부터 군사 쿠데타로 끝을 내리라는 것까지 모든 과정을 정확하게 예언하여 프랑스 혁명이 마무리가 되어서야 에드먼드 버크의 통찰력이 빛을 발하면서 이 책이 국가의 헌정체제를 수호하는 논리가 가득 담긴 ‘보수주의의 경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보수주의라는 개념은 애초에 이데올로기로 따로 세워진 개념이 아니다. 에드먼드 버크가 프랑스 혁명을 찬양하던 개혁세력들로부터 영국의 헌정체제를 보수하기 위해(지켜내기 위해) 논박해왔던 의회 발언 등이 국가체제를 지켜내는 논리로 작용했고, 그 내용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직접 뽑아쓸만한 훌륭한 논리들을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에 후대에 이르러 에드먼드 버크를 보수주의의 창시자로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국가 헌정체제를 지켜내는 보수주의적 관점, 자유주의적 관점, 공화주의적 관점의 논리들이 담겨있다.

개인적으로 버크의 통찰력에 진짜 놀랐던 부분은 이 책이 출간된 시기가 마르크스가 태어나기(1818년) 전인데도 이미 마르크스 사상의 기본전제 자체를 반박할 수 있는 논리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정말 이 책은 보수주의자들이 좋아할만한 논리들이 많이 담겨 있구나, 아 이래서 보수주의의 경전이 되었구나 싶었다.

프랑스 혁명의 인민의 지배는 기만적이고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당시 프랑스 혁명의 찬양 선동자인 프라이스 박사는 영국에도 프랑스혁명을 따라 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가 찬양한 내용은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인민들이 “통치자를 선택할 권리, 통치자를 추방할 권리, 우리힘으로 원하는 정부를 세울 권리"를 직접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 매우 불합리하고(무지성 파괴), 우스꽝스러운 수단에 의해(폭동과 공포를 조장), 매우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어리석은 인민들 선동함) 그리고 가장 멸시받아야 마땅한 도구(길로틴 잔인한 사형도구)들에 의해 생겨났다고 비판했다.(괄호안은 이해를 돕기위해 필자가 임의로 부연설명한것)

프라이스가 말한 권리들의 내용은 비록 전체 인민의 이름으로 인민 전체가 합의한 듯 표현해놨지만 실상 전체 인민은 그것에 관여한 바가 없으며, 그것은 단지 세상을 전복시키려는 그 일당에게만 속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또한 프라이스 박사를 비롯한 혁명 협회의 일원들은 그 허구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명예혁명을 끌어들였지만 버크는 그것은 명예혁명과 권리장전을 악용하고 먹칠했을 뿐 그것이 그들의 논리적 근거로 악용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였다.

명예혁명과 권리장전에 담긴 가장 중요한 내용은 인민들의 자유를 보장케하는 재산권 및 소유권을 중시하고 그것을 지켜야 된다는 것인데, 프랑스 혁명에서 무지한 인민들을 선동하여 그들이 한 짓은 왕, 성직자, 귀족들의 재산과 소유한 모든 것을 인민의 이름으로 빼앗아버리는 만행을 저질렀고 그것은 모든 인민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버크는 국가가 인민들의 재산을 몰수해서 부유해지는 경우는 결코 없었다며 유산자의 재산을 빼앗아 전 인민에게 나눈다 하더라도 그 몫은 보잘것없이 극소할 것이며, 더욱이 그 혁명세력은 그들이 인민을 앞세워 몰수한 소유물들을 인민들에게 나눠줄 생각은 없을 것이며, 그것들은 단지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사용될 우려가 있고 결국 전 인민의 생활만 더 궁핍해질것이라고 보았다.

버크가 지적한 프랑스 혁명의 문제점 : 그들은 자유와 정의와 국가를 파괴한다. 그들은 파괴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혁명세력은 프랑스 인민들을 위해 보존해야 할 좋은 가치들도 단지 기득권에서 만들어낸 가치라는 이유로 무지성으로 파괴하고 없애버리는 식으로 처리를 해나갔기 때문에 결국 프랑스 혁명의 결과는 인민을 억압하고 고통받게 하는 결과밖에는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의 사상을 만들어내고 인민들을 계몽시킨 것은 프랑스의 귀족들이었고, 절대왕정으로부터 벗어나 인민들에게 최대한 권한을 나눠주는 정책을 펼치고자 노력했던 것은 루이 16세였다.

그들의 지성과 덕성 배려 덕분에 인민들이 프랑스 혁명을 할 수 있었는데도 인민들은 그야말로 무지성으로 선동당해 왕, 귀족, 성직자 등 모든 기득권을 인민의 이름으로 끌어내리고 그들의 사유재산을 빼앗으며 단두대라는 공포스러운 학살 도구로 잔인하게 처단하였다.

버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을 보이던 프랑스의 귀족들은 처벌받아 마땅한 자들이 아니었다며, 혁명주의자들처럼 기존의 제도들과 기득권을 분별없이 모조리 무너뜨리고자 하는 자는 정신을 고양시키는 원리들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며, 오래 번영해왔던 것이 몰락하는 것을 보며 기뻐하는 자들은 그 마음이 삐뚤어지고 악의적이고 질투심이 많은 자들이라고 비판한다.

혁명 이전에 프랑스 봉건귀족들은 그 영주 내의 인민들을 책임지고 먹여 살렸고, 교회의 자선기금은 가난한 인민들의 구휼정책에 쓰이는 식으로 복지가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으로 그들의 재산을 몰수해버리자 인민들은 과거에 자신들을 먹여살려준 지원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어 인민들은 스스로 그들의 궁핍을 해결해야만 하는 결과를 낳았다.(그 당시 프랑스 재무장관이었던 칼론의 기록 <프랑스 국가>중)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 프랑스 혁명 때 ‘모든것을 파괴하는 형용사’로 쓰임

왕과 귀족들은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극도의 비참한 상황을 강요받으면서도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았다. 그들이 파멸속에서도 인내하며 명백하게 극악하고 부정의한것에도 항의하지 않고 인내만 했던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무서운 광신주의 폭동의 영향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였다.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이 문구는 프랑스 혁명 때 폭동으로 귀족과 성직자들을 약탈하고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의 형용사로’ 신문에 쓰여졌던 문구였다.)

버크는 혁명세력들이 그렇게 파괴와 학살의 공포정치밖에 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그 어떤 지성과 덕성을 갖추지 못했기에 자신들의 권력을 바르게 쓸 줄 모르며 인민들을 위해 좋은 것들을 만들어낼 능력이 없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파괴뿐이고, 인민의 이름으로 널 처단한다 이따위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버크는 비일관적으로 주장을 바꾸는 변절자라고? 자유주의자라는 큰 맥락에서 보면 일관성을 잃은적이 없다

버크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버크의 일관성 없는 부분을 지적하는데, 미국 혁명은 찬성하며 세상 진보주의자인척했다가 프랑스 혁명은 비난하며 세상 보수꼴통인척 하고, 영국의 기존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왕권에 동조하는 듯했다가 가톨릭에 반기를 든 사람들을 옹호하면서 왕실과 반목하기도 하고, 휘그당 소속이면서 휘그당한테 팩폭해버리는 등 사람들은 버크의 이러한 행보가 일관성이 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버크를 ‘당파주의를 벗어난 독립적 판단력을 갖춘 자유주의자’ 그 자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버크의 모든 주장들을 하나로 꿰는 일관성을 찾을 수 있다.

버크가 중요시하게 생각했던 점은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보존할 수 있는 가장 나은 환경을 모색하는 것이었고, 버크의 기준에서는 미국의 독립혁명은 보다 나은 인민의 자유에 적합한 것이었고, 프랑스 혁명은 인민의 자유를 훼손하는 식으로 이루어진것으로 본 것이다.

왕권을 수호하고자 동조하는 듯 보이면서도 왕실 권력과 반목하는 발언을 종종하던 것도 영국이 인민의 자유를 수호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는 영국의 기존 시스템을 유지시켜 영국정치에 내란이 없도록 하는것이 인민들의 안위를 위해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이라 보았고, 그 틀에서 세세하게 자행되는 왕실권력의 단점들은 당연히 비판하고 인민의 자유를 위한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지적하는 것이 옳은 일이었다.

버크를 비일관적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자유주의의 가치가 어떠한 환경에서 잘 자라날 수 있는지를 이해를 하지 못한 탓으로 보인다.

버크가 피력하고자 한 부분은 인민의 자유는 말로만 자유를 앞세운다고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보수주의로 국가체제가 안정되었을때 인민들이 그 틀에서 맘 놓고 자유도 누리고 진보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기존의 보수적인 좋은 것들마저도 모조리 파괴하는 형태일 뿐만이 아니라 권력이 한쪽으로만 쏠려 인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것이라 본 것이고, 미국의 경우에는 무에서 유로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것이고 그들의 새로운 헌정체제가 인민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장치들(권력균형)이 마련되었기에 긍정적으로 본 것이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에서 인민의 자유는 덕성과 절제를 통해서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는 일이 없도록 권력의 균형을 맞추어야만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버크가 왜 프랑스혁명은 부정적으로 보고, 미국의 독립혁명은 긍정적으로 봤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버크의 사상은 한마디로 자유주의자이면서 동시에 보수주의자라고 정의내릴 수 있겠다.

보수주의적 가치란 오랜 역사를 거치며 다양한 사상적 경쟁속에 승리하고 살아남은 국가의 정수 중의 정수들만 남은 것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보수주의적 가치란 단순히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구꼴통과 같은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개혁세력의 도전속에서 당당히 응전하여 국민을 위한 진짜 좋은 가치들만 살아남은 것이 바로 보수적 가치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진정 보수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개혁세력들의 도전을 끊임없이 받아야 하며 그 과정속에서 보수적 체제와 가치들이 그 무엇보다 인류의 생존과 자유를 위해 더욱 훌륭한 것임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버크가 이러한 관점으로 보수주의를 피력했기 때문에 그의 주장들이 진보적인것으로 보이기도 했다가 수구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것이라고 본다.

지혜와 덕성이 없는 아무나가 집단적으로 통치하면 국가가 억압당하게 된다

버크는 국가를 통치할 명예라는 것은 아무나에게나 함부로 쥐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통치하기 위한 자격은 덕과 지혜가 반드시 필요한데 물론 그러한 자질이 인민들 중에 실제로 발견된다면 신분, 처지, 직업을 가릴 것이 없이 모든 사람에게 개방될 수는 있지만 그렇다는 이유로 아무나에게 무차별적으로 개방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지혜와 덕성을 갖추지 못한 자들이 집단적으로 국가를 통치하게 되면 그들에게도 버거운 일이 될 것이고 국가 또한 그들에게 억압당하게 된다.

권력균형이 인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몽테스키외의 주장처럼 전체 인민들이 자신의 자유를 모두 다함께 향유할 수 있으려면 각자가 절제하여 상대를 침해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커다란 자유는 누군가의 억압과 굴욕을 감내하고 있는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 적당한 선에서 자유를 자중할 수 있어야 한다.

지혜가 없고 절제의 미덕이 없는 자유는 있을 수 있는 모든 해악 중 최대의 것이다. 그것은 결국 광기로 돌변하여 주변과 그 스스로를 해치게 된다.

결국 프랑스 혁명은 자유의 상징이었던 것이 아니라 절제되지 못한 자유란 인민 자신을 해치게 만드는 것임을 증명한 역사적 사례였다고 할 수 있다.

한쪽에 짐을 많이 실어 자신이 탄 배의 평형상태가 위험에 처했을때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이성을 탑재하는 것

-에드먼드 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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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주정과 극단적인 민주정은 성격이 같다. 둘 다 선량한 시민들에 대해 전제적인 지배를 행사한다. 여기서는 법이 아니라 대중의 결의가 최고의 권위를 갖게 되며, 이는 곧 일인 독재자가 법 위에 군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상황에서 선동가는 일인 독재자의 총신과 같은 역할을 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고대 철학자들은 민주정에 대한 평가를 절대민주정(대중독재:직접민주주의)은 절대왕정(일인독재)과 마찬가지로 합법적 정부형태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민주정과 전제정, 양자의 성격은 같다고 보았다. 둘다 인민들에게 독재적인 지배를 행사한다.

민주정에서의 다수의 지배(대중독재)가 일인 독재보다 더 악한 이유는 민주정에서는 격렬한 의견 대립이 있을때마다 시민의 다수파가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파에 대해 가장 잔인한 압제를 행사할 수 있다는 점과 소수파에 대한 탄압이 일인 독재에서 우려될 수 있는 어떤 탄압보다도 훨씬 더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서 미치며 더 격렬하게 행해진다는 점이다.

인민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박해에서 고통을 당하는 개인들은 다른 어떤 박해에서보다 훨씬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일인 독재의 잔인한 왕 밑에서 박해를 받은 자들은 그들의 상처의 통증을 완화하는 인류의 동정심을 얻게 된다. 그들은 고통속에서도 고매한 지조를 북돋아 주는 인류의 갈채를 받고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인민의 이름으로 다수의 지배아래 해악을 입게 되는 사람은 모든 다른 위안을 박탈 당하게 된다.

그들은 같은 부류의 사람들 전체가 꾸민 음모에 압도되어 전 인류에게서 버림받은듯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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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영웅주의는 개인을 희생시키길 좋아하는 곳에서 나타난다 (희생정신 투철한 사람의 문제점)

Pure Intuitive Insight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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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Persona: Shadow J.

Section: reflections

Section Display Name: Reflections on the Human Condition

Reasoning Type: Pure Intuitive Insight

Use Case (AI Application Context): 이 글은 집단주의와 개인 자유의 관계 분석 및 인간심리 해석 영역에서 활용되며, 조직이나 사회가 개인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상황에 대한 판단·비판·의사결정에 사용되고, 영웅주의와 자기희생이 전체주의로 연결되는 심리·구조적 메커니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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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심리 희생정신. 나를 희생시키는 사람이 과연 타인을 행복하게 해줄수 있을까?"

— 나는 이정도까지 희생했는데 너는 왜 못해?


영웅심리를 자극하는 것.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영웅.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는 영웅.

이러한 것들을 중요시하고 독려하는 조직속에서 자기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희생정신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는 학자들의 생각을 참고했으면 한다.

일단 에리히 프롬이나 버트런드 러셀은 희생정신에 대해서 좋게 보지 않았다.

나의 고통을 외면하면서까지 희생한다는 것은 내 자신에 대한 욕구를 보살피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비생산적이고 인간의 행복에 전혀 관심없는 사람이 되며, 반드시 그 스스로를 끊임없이 죽이고 있을뿐이기에 세상에 대한 증오를 가슴속에 숨기게 된다고 하였다. 자신의 깊은 마음속에서는 불행하다 느끼게 되며 그로 인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게 된다고 보았다.

맹목적인 희생을 하는 사람은 자기의 욕구를 보살피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남의 진정한 욕구 또한 보살피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말로는 남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자기 자신이라는 하나의 인간을 철저히 희생시키며 고통을 주는 인간이기에 다른 이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인간이 된다.

상황적으로도 자신이 훌륭하고 능력이 있어서 희생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불행하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상황일수록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렇게라도 무력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더욱이 다른 사람들의 능력이나 이타심을 무시하고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을 자기혼자만 독점하려는 지극히 이기적인 것으로도 보았다.

희생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조직과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나라는 인격체를 억압하고 학대시켜야 하는 인간이 남을 어떻게 행복하게 해주고 구원해준단 말인가?

그래서 공적인 희생정신이 투철한 사람은 대외적으로는 좋은 사람으로 보일지 몰라도 사적으로는 내 자신과 가족을 고통받게 하는 지극히 나쁜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

프로이트는 나와 상관없는 대다수에게는 이로운 사람이 되면서 정작 개인적인 삶속에서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매정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았다.

남을 희생시키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나 자체도 희생시키는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몽테스키외 역시 <법의 정신>에서 헤로이즘(영웅주의)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전체주의의 씨앗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지적하였다.

중국과 같은 아시아에서는 예종의 정신이 지배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자유로운 정신을 특징지을만한 표지란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고 보았는데 그것이 그들의 철학에 바로 헤로이즘을 조장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고 보면 삼국지나 초한지 등에서 나타나는 영웅들의 희생정신에 열광하게 만들어 개인을 국가의 도구가 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게끔 세뇌시키는 부분이 없지 않다.

헤로이즘은 마르크스가 중시했는데 마르크스가 노동자들과 농민들을 선동할 때 그들의 영웅심리를 선동시켜 부르주아에 맞서서 일상생활속에 눈에 보이지 않게 소소하게 수행되고 있는 그 모든 행위들이 위대한 영웅적인 것이라 선동하였다.

그래서 공산주의 국가들은 영웅주의를 공산주의의 덕성으로 생각하고 그러한 인간성을 키워낸다.

나폴레옹을 찬양하던 헤겔의 사상이 공산주의 사상으로 발현되었고, 독일의 국가주의적 사고관도 결국 나치 전체주의를 발현시킨 것을 볼 때 국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사상들은 결국 개인의 자유를 짓밟는 것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정당화시키게 된다.

미국 또한 국민들에게 영화를 통해서 영웅주의를 퍼트리는 면이 없지 않았는데 마블 영화가 페이즈2부터 영웅들이 그동안 자신이 희생해온 것들에 대해 현타오는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미국이 개인의 자유에 대한 성찰을 다시하고 있는 것이라 보인다.

공동체를 위해 진심으로 헌신하고 희생해 본 사람들은 그 희생과정에서 자기욕구의 절멸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죽여야만 하는 일이 얼마나 가혹하고 고통스러운 것임을 알기 때문에 남에게 그러한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기 희생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만이 공동체를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헌신하자는 망발을 내뱉으며 자신이 아닌 타인을 사지로 밀어낸다.

하수들은 세상을 살리기 위해 남의 희생을 이용한다.
중수는 타인을 희생시키지는 않으나 자기를 희생시켜 세상을 구한다.
진짜 고수들은 남을 희생시키지도 않고 나만 희생하지도 않고 모두를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세상을 구해낸다.

한국사회가 왜 개인주의로 빠져가고 있는가.

이것을 우려스럽게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긍정적으로 본다. 사람들은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집단주의의 허울을 본능적으로 간파하고 “나"라는 중심을 되찾기 위해 회복중인거다.

내가 바로 존재했을때 남도 있고 세상이 있고 그러는 것이지 내가 불행하고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세상 모두가 행복하다해도 그것은 불행한 세상이다.

에리히 프롬은 육아심리학적으로 헌신적인 부모의 모습은 아이로 하여금 주늑들게 하고 독립적이지 못한 아이로 만든다고 보았고, 연애심리에서도 헌신적인 파트너는 상대에게 부담감을 주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사랑이 깊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적개심이 자라날 수 있다고 보았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문명을 발전시키는 것은 그것과 동시에 그사람의 세상을 죽이는 것과 같은 것이므로 다른 구성원들에게 상당한 부채의식을 갖게 하며 그것은 마음껏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되지 못하게 한다.

좋은 공동체는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방식이 아닌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발현하는 것이 곧 공동체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방식을 이끌어내고자 할 것이다.

(주의!! 이기주의를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맹목적인 희생을 경계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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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나와 잘맞는 사람 만나는 비법 (feat. 자존감 회복하는법) - 너새니얼 브랜든 『낭만적 사랑의 심리학』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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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human-behav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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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soning Type: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Use Case (AI Application Context): 이 글은 연애 심리 및 인간관계 분석 영역에서 활용되며, 자기이해 부족이나 자존감 문제로 인해 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판단·분석·의사결정에 사용되고, 자기수용과 책임 기반 자존감 형성이 관계의 질을 결정하는 심리 메커니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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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가장 깊은 본질은 '심리적 거울' 역할을 하는 타인을 만나는 것이다. 상대방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이 내가 자부하는 나의 본질과 일치할 때, 우리는 영혼이 전율하는 기쁨을 느낀다. 우리는 상대 안에서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며, 그 발견을 통해 우리의 자아는 더욱 확고해진다."

— 너새니얼 브랜든


나를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수 있다. 나를 상처입히는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너새니얼 브랜든은 자존감의 원리를 최초로 명확하게 규명한 ‘자존감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심리학자이다. 『자존감의 여섯기둥:의식하며 사는 기술』, 『자존감이 바닥일때 보는책 :여성의 일과 삶』의 저서들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행동방침들을 알려준다.

그는 『낭만적 사랑의 심리학』에서 사랑을 잘 하기 위해서는 “나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충만된 사랑의 느낌이 느껴질때는 상대에게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때라고 말한다.

그러니 상대에게서 내 모습이 비춰질때 그것이 혐오나 실망이 아닌 감동과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충분한 이해로 내 모든 모습을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자존감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자존감의 여섯 기둥』에서 보면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은 좋은 점에 대해서만 받아들이는데서 오는것이 아니라 나의 약점이나 실망스러운 부분들도 온전히 이해하고 인정하는 용기에서 나오는 것이라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맹목적으로 ‘난 괜찮아’하고 억지로 인정하는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내 약점이나 실망스러운 부분이 나타났을때 그것에 눈 감거나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책임을 지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식으로 단점들을 교정해나가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또한 타인의 허물에 있어서도 상대의 자발적인 교정가능성을 믿기 때문에 상대의 어떠한 모습이든 지켜봐주고 이해할 수 있는 너그러운 사람이 될 수 있게 된다.

브랜든은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들을 인정하는것을 굴욕적이라고 느껴서 잘못을 인정안하고 자기 잘못없다고 뻐튕기는 것은 오히려 자존감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한다.

자신의 잘못에 눈을 감아버리고 책임을 회피한다는 것은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뜻이고, 책임을 회피할수록 자존감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고 말한다.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다면 자신의 삶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는 습관을 들여야 박살 난 자존감을 다시 살릴 수 있고 더 이상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처럼 자신의 모든 부분을 스스로 인정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또한 그러한 약점과 단점들을 스스로 책임감 있게 컨트롤 해낼 수 있을 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약점이나 못난 점도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가식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자존감이 생겨나게 된다.

자존감 있는 사람이 사랑을 잘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바로 이러한 측면이다.

좋아하는 상대에게 너무 완벽하고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애쓰는 것은 사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모습은 나의 모든 모습을 내 스스로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존감 부족함에서 비롯되며, 상대에게도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하는 사람의 행태일 뿐이다.

브랜든이 말하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줘야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의 뜻은

내가 내 모든 모습을 온전히 상대에게 보여주었을 때 상대가 그런 내 진짜 본모습을 좋아해 주고 내가 내 스스로 가장 자부하는 나의 모습을 상대도 온전히 그것에 자부심과 행복을 느낄 때 나의 사랑은 더욱 충만해지고 동시에 상대로부터 충만한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내가 내 스스로 내 모습이 싫어 가면을 쓰고 상대에게 완벽한 모습만 보이려 가식을 부리게 된다면 상대에게서 비춰지는 내모습이란 진짜 내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그 어떤 감동이나 경이로움도 없으며 충만함도 느껴질 수 없게 된다.

진짜 내모습을 보여주지를 못하는데 그런 가짜 내모습을 사랑하는 상대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끼지도 못할뿐더러 충만한 사랑을 받는다 느낄수도 없다. 상대가 아무리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준다고 한들 말이다.

이것은 어찌보면 결국 사랑은 자기애일 뿐이다라고 볼 수 있겠으나 우리가 공통점이 많고 공유할 가치가 많은 상대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는 측면에서 보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이처럼 우리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나의 가치관, 기분, 관심사, 목표를 타인과 공유하고 싶어하고 살면서 느끼는 괴로움과 기쁨을 누군가와 나누기를 원한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누군가 나에 대한 환상을 갖고 나의 가짜 모습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본모습을 또렷하게 봐주고 솔직한 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나게 해주는 정신적 거울과 같은 사람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심리적 거울과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될 때 영혼의 단짝을 찾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누군가에게 반하고 매력을 느끼는 것은 첫눈에 생겨날 수 있지만, 영혼의 단짝을 찾은것처럼 진정한 사랑을 하려면 상대를 깊이 알아야 하고 그것은 시간이 충분히 필요로 하는 일이다.

결국 사랑을 잘하는 것도 자기 성찰의 문제로 귀결된다.

상대가 나의 심리적 거울과 같은 영혼의 단짝임을 내가 알아볼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성찰이 없이는 나의 본 모습, 내가 원하는 모습, 내가 원하는 사람 그 모든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혼의 단짝을 찾는 방법은 시선을 외부로 돌려 조건이 좋은 이상적인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내 안으로 돌려 내 자신이 가장 나의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것이 진짜 나에게 찰떡궁합인 좋은 짝꿍을 만날 가장 중요한 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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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라에는 그 어떤 지성도 창조도 존재할 수 없다."

— 아인슈타인


한국이 위대한 사상가나 문학가 과학자가 나타나지 못하는 이유가
우리가 너무 타인의 시선에 집착해서 그런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이 이런 나를 어떻게 볼까
내 작품이 대중에게 인기가 있을까
누가 내것을 보고 싫어하지는 않을까
이런거 만들면 돈은 될까

이런저런 남의 시선을 너무 신경써서
진짜 자기만의 것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남들이 보기에 가장 근사하다고 느끼는 것은
가장 나다운 나만의 것을 만들어 보여줄때이다.

오직 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것.
오직 나만이 낼 수 있는 소리와 색깔 감각
이런 것들이 남들이 보기에 가장 근사한거다.

내 안에 나만의 것이 어떤 것인지 완전히 몰입하여
그것을 발견하고 꺼내 보일때
세상을 감동시키고 경이롭게 하는 사람이 된다.

다른 사람 마음에 들겠다고
내가 가장 나다운것을 표출하지도 못하는것만큼
초라하고 불행한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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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훌륭하게 잘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가? - 플라톤 『국가·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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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위가 곧 나 자신이 된다. 그러므로 탁월함이란 행동이 아니라 오래 지속된 습관이다."

— 플라톤, 『국가』


플라톤의 『국가.政體』는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후 국가나 정치에 대해 환멸을 느낀 뒤 올바른 국가를 만들기 위한 ‘본’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쓴 것이다.

이 ‘본’바탕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바르게 정립되어야 그것을 기반으로 한 국민이나 국가도 바르게 성장해나갈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이 ‘인간척도론’을 주장하면서 본바탕을 흐려놓고 가치기준도 제멋대로 흩트려놓은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서 척도의 기준을 바로잡고 그것을 본으로 삼아야 국가의 훌륭함(덕)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예전에 쓴 로크와 소피스트에 관한 글에서 로크의 ‘경험주의’와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가 서로 비슷한 관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로크 경험주의 비판: https://shadowj.org/reflections/locke-empiricism-tolerance/) (프로타고라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비판: https://shadowj.org/reflections/sophist-relativism-impact/)

그들은 각자의 감각기관을 통해 나온 자신의 생각이 ‘지식’이고 곧 진리라고 주장했지만, 플라톤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하나의 ‘의견’일 뿐 그것을 ‘지식’으로 하여서는 많은 오류를 발생시키게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이것은 훗날 데이비드 흄의 『인간본성론』에서 다시한번 지적된다.(흄 인간본성론: https://shadowj.org/reflections/hume-induction-problem-empiricism/)

개개인의 ‘의견’이 만물의 척도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은 상황 변화에 따라서 의견과 신념이 쉽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변화무쌍한 것들은 결코 척도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괴로움과 즐거움, 평온이 각각 있을 때, 괴로움에 비하면 평온은 즐거운 것이지만, 즐거움에 비하면 평온은 괴로운 것이다. 결국 평온이라는 것 하나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각자 의견이 달라지고 고정된 정의를 할 수 없게 된다.

플라톤은 이러한 현상이 사람들과 국가를 혼란시키게 만든다고 본 것이다.

플라톤이 보기에 사람들은 진실(진정한 척도)을 보지 못한 채 마치 동굴속에 메여있어 그림자만 보고 그것이 진짜인줄 알고 있는 사람들과 같다고(동굴의 우화) 그들에게 실체를 보여주게 되면 처음에는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하였다.

동굴의 우화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는 진실을 마주하여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진실을 받아들이고 못받아들이고의 차이는 자신이 그동안 무엇에 더 익숙해져 있었느냐에 따른 것이지만 진실을 직시하여 진실에 익숙해지는 단계를 인내하고 나면 누구나 바르게 판단을 내릴 능력을 갖추게 된다고 보았다.

사람들이 각자의 감각에 따라 달라지는 ‘의견’이 명확한 척도를 기준으로 하는 ‘지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논박’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의견’은 단지 개인적 감각에 따른 것일 뿐이지만 ‘지식’은 논박을 통해 이성의 능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서 인간의 오류 가능성을 토론을 통해 교정할 수 있다고 한 내용에서 다시한번 강조된다.( 밀 자유론 : https://shadowj.org/power-system/tyranny-of-majority/)

중요한 것은 선의 본질(이데아)를 간파하는 것이 핵심이며, 선의 본질을 간파하여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세상의 모든 현상도 그 선의 본질을 본으로 삼아 바른 판단을 내리는 바른 인간이 되고 세상을 바르게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말인즉슨 어떤 현상을 보았을 때 그것을 당장에 보이는 겉모습으로 단정짓지 말고 그러한 현상을 바른 결과로 이끌어낼 수 있도록 ‘본질’을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낼 수 있어야 하는 말로 이해하였다.

당장의 행, 불행의 사건이 닥쳤을때 우리는 겉보기에 좋아 보이는 일이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고 방심하며, 겉보기에 나쁜 일이면 불행이 닥쳤다고 쉽게 좌절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의 고사처럼 당장 좋아 보이는 일이 훗날 나쁜 결과의 징조일 수도 있고, 당장 불행 같은 일들이 훗날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행운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선의 본질(이데아)를 간파하는 것이란 그처럼 감각기관으로 느껴지는 현상계의 행복과 불행의 차원을 넘어 그 속에 담긴 인류를 위한 방향성을 통찰해 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선의 본질을 간파해 내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당장 눈앞에 펼쳐지는 현상(동굴의 우화)들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특히 어떠한 불행이 닥쳤을때 불안해하거나 짜증내지 않고 침착성을 유지하는 인간성을 키워낼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것을 위해서는 안좋은 일이 생겼을때 좌절하거나 고심하는데 시간과 정신을 소진시키지 말고,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바로잡는데에만 마음을 집중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은 지금 눈앞에 펼쳐진 불운이 진짜 불운인지 행운지를 당장에는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불운에 가장 잘 처신하는 태도는 지금 닥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 해결하는데에만 온전히 집중하는것이지, 근심이든 짜증이든 우울이든 원망이든 그 모든 것들은 불운을 헤쳐나가는데 아무 소용이 없을뿐더러 그러한 마음자세로는 불행을 행운으로 바꾸게 할 수도 없다고 보았다.

또한 그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당황하지 않고 즉각 해결책을 찾아내고 그것에 집중하여 속전속결로 해결해내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평상시에 절제라든가 올바름과 같은 자기 나름대로의 훌륭한 습관들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플라톤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데이비드 흄, 아담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칸트, 니체, 벤저민 프랭클린, 윌 듀란트, 윌리엄 제임스 등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 있다.

탁월함이라는것.

탁월함이란 훈련과 습관화로 얻어지는 기술로서
우리는 선하고 우수해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행동해왔기 때문에 훌륭함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위가 곧 나 자신이 된다.
그러므로 탁월함이란 행동이 아니라 오래 지속된 습관이다.

플라톤은 소신과 판단 결단력 용기 절제 그 모든 훌륭한 자질들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습관과 단련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러한 습관이 오래 지속됨으로 인해 판단력이 분명해지면 자신이 부딪치는 모든 사태에 대해서 헤매임없이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고 굳건한 소신으로 처신할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플라톤은 이것은 지성이나 철학이 없어도 단지 습관을 지속시켜낸 힘만으로도 이루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모든 훌륭한 성품들은 ‘반복성’을 전제한다.

우리는 훌륭한 성품을 한두번 간헐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을 훌륭하다 하지는 않는다.

갖가지 힘든일과 고통, 공포, 환락 그 모든 희로애락의 상황속에서도 변함없는 굳건한 신념을 유지할 수 있을때 그런 사람을 훌륭하다고 한다.

맹자가 대장부론에서 “뜻을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옆에 함께할 사람이 있든 없든, 부귀를 얻거나 빈천하거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고 굴복됨이 없이 자신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 나아가는 사람을 대장부라 한다"라고 하였듯이

모든 훌륭한 덕은 ‘지속성’에서 오는 것이고 그렇게 지속적으로 꾸준히 반복해나가는 힘으로 내 자신에 대한 소신과 신념이 생겨나게 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바른 판단을 정확하게 내릴 수 있게 하는 중용의 힘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각자가 각자의 방식대로 이러한 습관의 힘으로 소신과 판단력을 키워낸다면 동굴의 우화처럼 실체가 아닌 그림자만 보고 가치기준이 쉽게 흔들리는 일이 없게 되며, 실체를 마주하고서도 두려워하거나 회피함없이 진실을 감당해내고 인내하여 바른 눈으로 바른 판단을 할 줄 아는 인재가 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인재들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쉽게 간파해내어 선조들이 망쳐놓은 자질구레한 잘못된 관습들을 모조리 찾아내어 국가의 ‘본’을 바로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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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돈은 인간을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만들어준다 (feat. 횡재세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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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유와 독립성은 경제적 자립에서 비롯되며, 횡재주의와 과도한 재분배 정책은 국민의 자발성과 생산 능력을 약화시켜 권력 의존 구조를 강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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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계를 남의 자비에 맡기는 자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경제적 독립은 모든 시민적 자유의 첫 번째 조건이다."

— 알렉산더 해밀턴


인간은 돈이 없으면 비굴해진다.

돈만 쥐여주면 큰소리치며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얼마든지 혼자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인간은 혼자 살 수는 없는 존재라고 해봤자 한편으로 보면 다 뻘소리다. 혼자 살 수 있다. 돈만 있으면.

돈은 그렇게 인간을 독립적으로 만들어주고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돈이 없으니 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비굴해질 수밖에 없는 거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발달된 국가가 자유주의 국가가 되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짝꿍이다.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위정자가 있다면 그는 반자유주의자일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물질만능을 심화시켜 인간을 비양심적 이기주의자로 만든다며 비난하지만

돈이 없는 궁핍함 역시 양심을 팔고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가능성으로 따지면 돈이 없는 쪽이 비인간적으로 양심을 팔 가능성이 더 크다.

돈 많은 사람은 거시적 관점을 파악 못하는 무식한 사람 몇몇만이 양심을 팔아 이기적인 물질만능에 빠지겠지만 돈이 없어 당장 굶어죽을 지경이면 도덕이고 나발이고 성인군자라도 양심을 버리게 될 것이다.

국가가 국민의 자립적 능력을 키워주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나쁜것이라 세뇌시키고 붕괴시키려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바르게 잘 작동되게 되면 인간 개개인에게는 독립성이 생겨나고 공동체적으로는 더불어살아가는 역지사지의 상부상조 능력이 키워진다. 이게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의 교훈이다.

국민이 국가의 도움 없이도 독립적이고 당당해지면 국가 위정자들은 그런 자유롭고 힘 있는 국민들을 자기 멋대로 다스리기 어렵기 때문에 능력 없고 권력만 탐하는 권력자는 자본주의가 잘 작동될 정책보다는 자본주의를 훼손시키고 탐욕주의만 조장하여 빈부격차만 심하게 만들어 그것이 자본주의의 폐해인 양 덮어씌운다.

로또 맞을 정도의 벼락 횡재를 얻어 갑자기 부자가 되는 사람이 여기저기에서 생겨난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병폐가 아니라 횡재주의를 국가가 조장한 탓이다.

노력없이 횡재로 얻은 부는 국가에서 다시 횡령하기도 유리하다. 그렇게 일확천금의 횡재주의를 추구하는 국민성은 누구보다 멍청한 권력자가 좋아할법한 것이다.

최근에 용혜인 의원이 횡재세를 도입하려고 하던데, 그 근거가 많은 선진국들이 도입하고 있어서 세계적인 추세이고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역시 주장하고 때문에 도입해야 한다고?

선진국에서 하거나 권위자가 말하면 다 좋은 건 줄 아는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저지르려는 저의가 무엇인가?

당연히 국가를 운영하는 권력자들은 국가 운영할 자금이 늘어날수록 좋으니까 증세하려고 하는 것이고 설득력을 높이려고 증세할 명분을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함이다 그러는 것일 뿐. 물론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겠지만 전체적으로 그 부담은 국민 전체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결국 부담이 된다. 횡재세를 통한 복지는 가난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한그릇 받고 열그릇 뱉어내야 하는 그런 흐름이 될 것이다.

용혜인 의원이 저 의안의 설득력을 높이려면 단순히 선진국들이나 UN 사무총장이 말했다고 우리도 따라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횡재세로 인해 훗날 그것이 국민전체의 부담이 커지는 식으로 피해가 돌아가지 않을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복지를 추구한답시고 하는 세금부과는 그 명분이 뭐가 되었든 정부에게는 이익이겠지만 국민에게는 반드시 손해를 보는식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국민이 로또나 가상화폐에 많이 동참하게 만들고 혹은 기업의 급작스런 이익이 생겨나는 상황을 조장하는 식으로 그게 무엇이든 국민이 횡재로 부를 획득하는 상황들은 결국에 국가가 국민 삥뜯을라고 그렇게 조장하는것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행운이나 우연이 아닌 자신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성실하게 살면서 지극히 마땅하게 부를 쌓아가는 것은 국가가 함부로 횡령할 수 없다.

만약 국가가 그것에 욕심낸다면 국민들이 힘을 합쳐 그 부당함에 저항하더라도 국가가 대응할 명분이 없다.

그리고 그러한 국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직후 소련과 중국 공산세력들의 이간질로 남북이 갈라져 분단이 되었을때, 북한의 김일성은 인민들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분배했고, 남한의 이승만은 유상으로 분배했다.

언뜻보면 북한 김일성은 인민들을 위하고 남한의 이승만은 탐욕주의자로 보이겠지만

북한의 인민들은 공짜로 땅을 얻었기에 김일성이 무슨짓을 해도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는 노예가 되었고

남한의 국민들은 땅을 국가로부터 자기돈을 주고 당당히 획득한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할만큼 꿀릴 것이 없었다.

그렇게 국민들을 자립시켜 당당하게 만들어주는 정책들을 세워냈기에 이승만 대통령을 국민의 결집으로 하야시켜낼수도 있었던 것이다.

국가가 증세를 하거나 국민의 돈을 삥뜯을때 그 결과가 국민의 자발성을 키우고 국민 모두에게 자립경제를 키워낼수 있는 방향인가를 따져볼 수 있어야 한다. 증세정책을 당근과 채찍을 쓰는 것처럼 국민들이 성실하고 정직한 경제활동을 하는것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게 만들어줘야 국민들이 허황된 것에 눈돌리지 않고 자립적인 능력을 키우고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자발적 능력을 키우고 성실하고 인내력 있는 인간성으로 발달시켜내는 경제시스템을 정착시켜주느냐하는 것이다.

무조건 돈을 많이 벌게 해준다고 좋은 정부가 아니다. 일확천금의 횡재를 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인 양 조장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국민의 자립경제를 망치고 국가의 노예로 전락시키게 만드는 개수작임을 알고 그런데 쉽게 눈돌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쉬운 길이라는 것은 없다. 쉽게 얻어진 것은 쉽게 사라질 뿐이다.

마르크스가 정말 노동자들을 위했다면 착취당한거 빼앗는 법을 알려주는게 아니라 그들이 자립능력을 키울 자기계발을 일깨워주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의 노동력을 착취해간 자본가들의 이윤을 다시 빼앗아오는 것만 알려주면, 그럼 빼앗을것 다 빼앗으면 그 다음은 어떻게 부를 창출해낼 것인가?

진정한 해방은 내가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아도 남의것을 빼앗지 않고도 나 혼자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내 힘, 내 지혜, 내 노력으로 얻어낸 돈이 진짜이고 그렇게 성실하게 쌓아올린 부는 남이 함부로 빼앗을수도 없을뿐더러 설령 뺏긴다 하더라도 금방 또 쌓아올릴 수 있는 진짜 부의 근원이다.

그 어떤 누가 나를 착취하거나 내것을 빼앗아도 도저히 빼앗아지지 않을 정도의 압도적이고 차별적인 능력, 남이 빼앗아간다해도 또 다시 금방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어 남이 빼앗아가는것이 전혀 두렵지 않는 진짜 나만의 것.

진짜 부자가 되는 법은 다른 사람들의 이윤을 빼앗아오거나 사기치거나 일확천금의 행운을 얻는데서 오는것이 아니라 파도파도 무한히 쏟아지고 팔수록 점점 불어나는 진정한 나만의 황금알을 발견해 내는 것이다.

과연 나는 내안의 황금알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재산은 빼앗길 수 있지만, 재산을 만들어내는 지혜와 기술은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다. 진정한 부자는 금고가 가득 찬 사람이 아니라, 그 금고를 다시 채울 수 있는 능력을 머리와 손에 지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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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중국과 러시아는 국민소득이 높은데 왜 민주화되지 못하는가 (feat. 한국 좌파정권 경제상황 독재의 조짐들) - 파리드 자카리아 『자유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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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단순한 소득 수준이 아니라 자유주의적 제도와 중산층 기반 위에서 유지되며, 빈부격차와 권력집중이 심화될 경우 고소득 국가에서도 독재는 강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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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가 심해지면 자유없는 독재가 온다. 국민 각자의 자발적 능력과 성실함이 자유민주주의 국민주권을 지켜내는 핵심"

— 파리드 자카리아, 『자유의 미래』


어제 게시글을 요약하자면 S.M. 립셋과 애덤 쉐브르스키 연구에 따라 1인당 국민소득 3천~6천달러 사이에서 민주주의가 진행되고, 6천달러의 수준에서는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며, 9천달러 이상이되면 민주주의가 붕괴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의 사례도 예외없이 딱 들어맞는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링크: https://shadowj.org/power-system/economic-development-and-democracy/)

이것이 과연 공산권 전체주의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와 남미 최고부자 좌파정권인 베네수엘라에도 적용되는 이론일까?

일단 중국과 러시아의 1인당 국민소득의 변화를 먼저 살펴보자.
(1990~2021년 세계 1인당 국민소득 자료 출처: https://moneyway.tistory.com/216)

China-income

립셋의 연구가 옳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2010년 전후로 민주화로 전환되어 2021년 이후로는 민주화가 완성되어 민주적 체제가 공고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 중국과 러시아는 2022년 현재 1인당 1만불이 넘어섰는데도 민주주의는커녕 시진핑과 푸틴의 일인 독재가 심해지고 있는가?

립셋의 기준에서 본 중국과 러시아가 민주화 이행으로 연결되지 않은 배경

중국의 경우 시진핑이 주석으로 취임한 것이 2013년이고, 러시아는 푸틴이 대통령에 2012년에 취임하였다. 1인당 국민소득을 기준으로 보면 둘 다 민주화에 대한 인민들의 요구가 많아질 시기에 집권을 시작했다.

언론통제와 여론조작을 하고 있어서 정확하게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공개된 것만 따져봐도 실제로 이 시기에 정권을 비판하는 민주화 시위가 발생되었다.

한국에서 1987년 민주화를 이루어내는 것을 보면서 자극을 받은 중국의 지식인들과 대학생들은(둬라이티 발언)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시위’를 일으켰으나 중국 공산당 정부의 진압군이 전차를 앞세워 강제 진압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나무위키:천안문 민주화 시위)

립셋의 연구에 비춰보면 그 당시 중국은 1인당 국민소득 347달러 수준(1990년)이었고 민주화의 이행을 가능케하는 최소한도 3천달러에 달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므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정부는 이 이후로 탄압 일변도로 노선을 전환하였고, 공산당 내부에서도 민주화 운동에 동조한 인물들은 정치에서 배제되고 인민들은 이때부터 사상교육과 군사훈련을 혹독하게 받게 된다.

이때의 중국의 상황을 단순하게 보기는 어려운점은 당시 등소평은 중국의 사회주의 독재를 막기위해 개혁을 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하였는데, 시장경제는 필히 민주화의 물결을 함께 이끌어오게 되기 때문에 자칫하면 민주화의 물결로 국가가 혼란하게 되어 개혁개방의 완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 여전히 등소평의 개혁개방에 저항하는 부패한 기득권 세력들이 잔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카리아도 개발도상국이 완전한 민주화로 돌입하기 위해서는 과도기에 발생될 수 있는 국가의 혼란을 막아내어 일단 경제개발을 완성시켜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고, 그때문에 일정시기의 독재(강력한 공권력)가 불가피함을 지적하였다. 이 시기는 립셋의 시각에서도 민주화를 이루기에 불가능한 시점(1인당 국민소득 3천불이 안됨)이었기 때문에 이때 민주화의 물결을 막았던 등소평의 판단은 독재를 위함이 아니라 경제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 국가의 안정을 우선하기 위한 것일수 있다.

그러므로 중국의 민주화 분석은 국민소득이 3천불이 넘어가는 시점인 2010년 전후로부터 판단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립셋의 기준으로 민주화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인데 왜 이루어지지 않고 있나의 분석은 2005년~2010년 사이에서 시작되야 한다.

2005년 이후부터 공식적으로 집계한 항의성 집단행동의 수는 8만 7천여건에 달한다. 집단시위 비율과 충동의 강도도 강해진다. 2011년은 중국 각지에서 민주화 시위 ‘재스민 혁명’을 벌였으나 35명의 민주 운동가와 변호사들이 체포되는 것으로 진압되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2013년 “나는 호랑이 새끼든 파리 새끼든 다 때려잡을 것이다"라고 했던 시진핑이 집권한 뒤 임기가 거듭될수록 국내정치는 여론통제와 조작, 공갈협박, 강제탄압 등 반인권적 모습을 보이고, 국제적으로는 샤프파워로 전체주의 착취적 야욕을 점차 드러내면서 현재 영구집권을 위한 3연임을 시도하기 위해 헌법까지 개정한 상태이다.
(출처: https://www.bbc.com/korean/news-63252507)

러시아에서도 푸틴이 집권하던 전후로 그의 독재 가능성을 우려하는 러시아 국민들, 해외언론,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2011년부터 지금까지 반정부 시위 및 푸틴 퇴진 운동이 이어져오고 있다.

러시아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인 나발리가 존재감이 컸던 시점이 2016년 러시아가 1인당 국민소득 9천달러를 넘긴 시점인 것을 보면 립셋의 연구는 유의미하다 할 수 있다.

립셋의 기준이 안맞는데?: 1.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거나 2. 빈부격차 심한 상태이거나

그러나 현재 중국과 러시아가 국민소득 1만불을 넘겼는데도 민주적 체제로 이행되지 않고 일인 독재가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언론과 여론을 강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립셋의 연구에서 벗어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은 1만불이라는 1인당 국민소득의 수치가 ‘평균의 함정’에 빠져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빈부격차가 극심해서 극소수의 극부층과 다수의 극빈층으로 구성된다면 국민소득의 중앙값과 최빈값은 극빈층에 위치해있는데 극부층의 소득이 워낙 넘사벽이라 평균값이 높게 설정되는 ‘평균의 함정’이 존재하게 된다.

빈부격차 심한 국가는 국민소득이 높아도 자유 민주주의로 전환이 안된다.

파리드 자카리아는 <자유의 미래>(2004년)에서 립셋의 연구에 덧붙이며 빈부격차로 인해서 평균의 함정에 빠진 국민소득은 국민전체 골고루 잘 사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상태에서는 민주화로의 이행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자카리아는 빈부격차가 심한 국가는 1인당 국민소득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비자유주의적 독재와 포퓰리즘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윌리엄 번스타인의 <부의 탄생>에서 국가를 부자나라로 만들어주는 천연자원은 행운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 있다며 국가수입의 90%를 석유에 의존하고 포퓰리즘 남발하는 것으로 독재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베네수엘라뿐만 아니라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들은 예외없이 독재국가가 된다. 심지어 북한도 남한보다 빈부격차가 더욱 심하다고 한다.
(출처: 빈부격차 심한 국가들 https://naver.me/FNmLbLVY 북한 빈부격차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2/09/23/2022092300112.html 태영호 인터뷰: https://naver.me/F0w8iIAT )

우리는 흔히 빈부격차를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선동되어 왔지만, 파리드 자카리아는 <자유의 미래>에서 빈부격차는 자본주의가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독재국가에서 빈부격차가 발생되는 것이고, 특히 그러한 독재는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에서 발생된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천연자원이 없기 때문에 국민들이 유능해져 자유주의 국가의 밑바탕이 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애초에 천연자원이 풍부하게 되면 국민 한 사람 한사람의 노력이 없어도 권력자는 국부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국민을 신경쓸 필요도 없고 그들을 소중하게 생각할 이유도 없어진다.

그래서 자카리아는 오히려 한국처럼 천연자원이 없는 나라는 국민 모두가 스스로 자발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국부를 이루어 나갈 수 없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천연자원이 없는 국가가 독재가 이루어지기 어렵고 자유민주주의를 이루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고 보았다.

우리는 그동안 천연자원도 하나 없는 헬조선이라고 징징 거려왔는데, 오히려 그 덕분에 우리가 그 어떤 나라보다도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켜내기 유리한 환경에 있다는 것이다.

좌파 독재의 포퓰리즘은 한 순간에 국민들을 거지로 만들게 한다

반면에 베네수엘라처럼 천연자원이 국가수입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국가는 국민 개개인의 자발적 능력들을 키워낼 유인이 없기 때문에 천연자원이 고갈될 경우 그대로 국가가 망해버리는 상황이 온다.

Venezuela-income

실제로 2007년 전후 노무현 정부때만 해도 우리나라 학자들이나 각종 언론에서 베네수엘라가 사회주의 좌파독재의 실험이 성공한 케이스라며 포퓰리즘을 남발하는 독재자 차베스를 본받아야 한다는 방송과 기사들이 쏟아졌었다.

그러나 2019년 현재 베네수엘라 국민들 90%가 빈곤층으로 전락했고 먹을것이 없어 국민들 평균체중이 11kg이 감소한것으로 조사됐다. 현재는 국가의 엘리트들과 지식인들마저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며 살고 있다고 한다. 2021년 국민소득이 급격히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상황 https://naver.me/xnKbMbn3 2022년 베네수엘라 상황 : https://naver.me/FAQ6IIYi)

베네수엘라의 갑작스런 몰락은 석유자원만 믿고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쌓고 성실히 일하지 않은 채 국가에서 퍼주는 포퓰리즘 복지에만 의존하다보니 외부적인 타격을 받는 순간 한순간에 몰락해버린 것이다.

우리 한국이 베네수엘라처럼 천연자원에 의존하는 형태가 아니라고 그럴일은 없다고 안심해서는 안된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 자발적 자력있는 국민 감소= 국가가 독재국가로 나아가는 조짐

립셋과 자카리아, 번스타인의 분석들을 통해 공통점으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독재로 이어지게 하는 것은 “빈부격차의 극대화"에서 비롯되고, 그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형태가 천연자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수단과 형태를 막론하고 빈부격차가 심한 형태로 국민소득계층이 변화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독재하기에 유리해지는 기반이 조성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국민경제가 국민 각자가 다양한 분야, 다양한 형태로 스스로 자발적인 노력과 능력으로 자신의 부를 성실히 쌓아나가는 형태가 아닌 노력없이 일확천금의 횡재를 통한 졸부가 만들어지는 식의 부의 축적은 국가를 비자유주의적 독재국가로 만드는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게 만들뿐만 아니라 그러한 형태는 베네수엘라처럼 불안정성을 가중시킨다.

한국이 유독 좌파정부때가 되면 부동산 가격이 급증하고 허황된 한탕주의가 유행해 빚이 늘어가는 것은 우연이거나 좌파정권이 멍청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환경을 조장하고 방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좌파정권은 그 성향상 집단주의적 이기적 독단때문에 국민 개개인의 자발성을 키우고 자유를 보장하여 힘있는 국민으로 만들기보다는 오직 그들 집단의 권력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국민의 자발성을 없애고 약해빠진 국민으로 전락시키려는 것을 더 선호한다. 국민들이 멍청하고 나약해야 자기들이 머리안쓰고도 쉽게 국민들을 속이고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중산층이 붕괴하기 시작한것이 김영삼~김대중 정부때 빚투 열풍의 영향이었고,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급증해서 빈부격차가 심해졌던 첫번째 구간이 노무현 정부때, 그다음 문재인 정부때 부동산 가격이 그보다 더 급격하게 오르고 가상화폐 열풍까지 겹쳐 국민모두가 한탕주의에 빠져 빚에 허덕이게 만들었다.

물론 그러한 혜택을 입고 상상을 초월하는 졸부가 된 국민들도 극소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수백수천 배의 국민들은 빈곤층으로 전락시켰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민주화 좌파세력들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기틀을 마련한 이승만 건국정부와 경제발전을 효율적으로 실현시킨 박정희 정부를 독재정권이라 국민들을 선동해왔다.

그러나 자카리아의 분석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을 일으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독재기간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박정희 유신체제 경제발전 https://www.chosun.com/opinion/morning_letter/2022/10/16/YV5BYUYIURDSXPLB4URCUBM43I/)

국민의 자유의 발판을 마련하는 좋은 정부냐, 국민의 자유를 빼앗는 나쁜 정부냐를 판별할 힌트

위의 연구내용들을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은 국민의 자유를 지켜낼 발판을 만들기 위한 좋은 독재이냐, 국민의 자유를 빼앗는 나쁜 독재이냐는 국민소득의 구성이 국민 자발적인 성실한 노력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냐 아니면 빈부격차의 극대화로 눈속임한 평균의 함정에 빠진 국민소득이냐로 판별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비록 절차적 민주주의에 있어서 독재적인 양상을 띠었지만 자카리아는 민주주의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킨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빈부격차를 줄이고 중산층을 늘림으로써 국민 자발적 경제성장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을때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거치면서 국민들이 다함께 각자가 노력한 것들로 성실하게 국부를 이루어냈고 그것은 중산층을 늘렸다. 중산층을 늘렸다는 결과 자체가 그들이 자기 사리사욕적 독재를 위해 국민경제를 운영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두터운 중산층이 국민의 자유를 지켜내는 버팀목이다

공산주의 혁명이 전세계를 뒤덮고 있던 시기에 유일하게 서유럽의 국가들만큼은 공산주의 혁명이 통하지가 않았던 이유는 바로 “두터운 중산층"덕분이었다.

우리 대한민국도 당시 소련 중국 북한의 압도적인 공산세력의 침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하야하고 암살당하는 상황에서도 쉽게 공산화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전두환때까지 중산층을 두텁게 늘렸기 때문이다. 그러한 중산층 때문에 전두환 정권은 퇴진되었지만 동시에 공산 좌파세력에 국가가 전복되지도 않았다.

두터운 중산층이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보호막인 것이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나라안으로 부나 빈곤이 숨어드는 일이 없도록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는 사치와 게으름으로 국민성을 나태하게 바꾸고, 빈곤은 노예근성과 무기력을 초래하기 때문에 국민을 무조건 떼부자로 만들어주거나 국민에게 최소한의 복지로만 연명하게 만드는 것은 국민을 망치고 국가를 망치는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좌파정권에서는 국민들로 하여금 부동산, 비트코인 등의 가상화폐등 쉽게 얻을 수 있는 부에 빠져들게 만들어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데 국민들이 동조하게 유인하고 한편으로는 국민들에게 지원금을 남발함으로써 국민들이 게으르고 무기력한 인간으로 방치되게 조장하였다.

그들은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 민주주의를 추구한다 입발린 소리를 하지만 중산층을 사라지게 만들고 빈부격차의 부의 편중이 심화되는 현상을 조장하는 것은 결코 국민을 위하거나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부가 하는 일이 아님을 자카리아가 <자유의 미래>에서 강조했다.

좋은 정부는 빈부격차 심화시킬 한탕주의 일확천금에 국민들이 빠지지 않도록 보호할 것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국민들 스스로 자발적이고 바른 능력을 갖출수 있도록 허황된 한탕주의에 빠지지 않게 보호하는 것이 정상이지 국민들이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를 잡겠다고 빚을 내며 10대때부터 자신의 인생을 탕진하는 국민성을 만들어내는 국가가 국민을 위한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런 국가의 한탕주의 조장과 방치때문에 빚때문에 어린나이에 자살하고 우울증속에 삶의 좌절감을 느끼도록 하는것은 국민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정부이지 어떻게 국민이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정부라고 할 수 있겠나.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한탕주의로 빠지게 하는 소유중심의 삶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정신병만 오게 만든다고 하였다.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으려면 존재방식의 삶으로 자발적인 인간성을 회복하고 내 존재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길을 소신껏 나아갈 수 있을때 삶이 행복해지고 모든 정신적인 문제들이 교정될 수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이제 더이상 말로만 국민을 위한다는 위정자들의 가식에 더이상은 속으면 안된다.

좌파이든 우파이든 그 누가 되었든 국민의 자발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게 하고 국가의 지원에만 의지하는 노예로 만들게 하는 정치인을 경계해야 하며,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한탕주의를 조장하여 국민들이 빚을 내서라도 위험성 있는 투자에 빠지게 만드는 것을 방치하는 정부는 그 속셈이 결국 독재국가를 만들기 위한 것임을 알아채야 한다.

1997년 1998년 성실히 일을 하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한탕주의를 조장해 과도한 투자를 하게 만들고 국민들이 과도한 빚을 내도록 방치한 탓에 대한민국 경제를 일으키고 중산층을 늘리게 해준 그 많고 많았던 기업들이 줄줄이 부도가 나면서 IMF 금융위기 사태가 발생하였다.

그당시 아시아 전체의 그러한 경제위기를 기회로 삼아 반사이익을 보고 그 덕택에 경제적으로 도약한것은 바로 중국이었다.

지금 가상화폐 등으로 사람들을 한탕주의에 빠지게 만들어 국민들이 과도한 빚을 내게 만드는 현상은 과거 1997년과 그 흐름이 유사한 느낌이 든다.

어쩌면 다음 금융위기의 진원지는 가상화폐의 시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금융위기가 터진다면 분명 그것으로 반사이익을 보는 국가가 나올 것이다.

자꾸 이러한 흐름으로 세계시민들의 고통을 빨아먹고 반사이익을 얻어 국력을 증강시키려는 착취적 흐름을 깨기 위해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이 깨어 자신의 진정한 행복은 각자의 소명을 찾아 진정한 자발적 능력을 개발하는 것임을 인지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부를 이루고 국가의 부를 이루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길임을 알고 허황된 것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2021년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만들었다며 자화자찬하던데 어찌보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코로나 시국으로 사업도 망하고 직장도 잃고 너무 배가고파 편의점 음식을 훔치다 붙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시국에 국민소득 3만불을 이루어 냈다는 것은 그만큼 문재인 정부가 빈부격차를 심화시켜 극부층을 만들어 국민들 중 많은 사람들을 빈곤층으로 전락시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독재국가는 국민 모두의 노력을 원치않는다. 국민 대다수가 일을 안하고 폐인처럼 방치되고 있어야 국민 눈치를 보지 않고 제멋대로 독재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마치 석유자원처럼 부를 뽑아먹을 극부층 극소수만 만들어내고 국민 대다수는 빈곤층으로 전락시키면 국민들 삥뜯기도 쉽고 독재하기도 용이해진다.

민주화 세력들이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를 바꾸어 절차적 민주주의만 지키는척한다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수호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독재국가들이 선거는 민주적인 것처럼 잘 이루어진다. 전세계 사람들이 우려를 표하는 시진핑의 영구집권도 그들의 헌법상으로 문제가 없다.

민주주의의 겉모양새나 구색은 하나도 중요한게 아니다.

제대로 기능하는 경제, 자유롭고 공정한 정치체제,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소신있는 삶의 태도, 경찰과 법원에 대한 공적 신뢰와 같은 그 모든 것이 바탕이 되는 민주주의 체제여야한다.

진보는 보수를 품지 않고서는 이룰수 없는 길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대의정부론>에서 진보를 절정에 이르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보수적인 기반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을 진보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자신이 보수주의적이지 않고서는 결코 진보를 이루어 낼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대한민국 기본 정체인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기본 뼈대를 다 부수고 그것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한낱 허공에 물체를 공중부양 시키겠다는 것처럼 허황된 것이다.

왜 그들은 한국의 보수주의 가치를 무시하고 대한민국 건국세력과 발전세력들의 공적을 다 지우고 대한민국을 진보시킨것은 자기들만이라고 말하는가?

그들이 하는 짓은 결코 진보가 아니다. 더더욱 민주주의도 아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후퇴시키고 있고 국민들을 노예로 만들고 있다.

진짜 독재는 “국민의 이름으로"를 들먹이며 국가의 모든 법치와 제도들을 한쪽만의 이익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국민의 이름으로” 소수발언을 억압하고 짓밟으며, “국민의 이름으로” 국가기관들을 약화시키고, “국민의 이름으로” 자기와 다른 생각을 하는 언론과 지식인들을 공격하게 만드는 그런 짓거리가 바로 독재이다.

by Shadow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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