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Archive] 여론이 민주주의의 근간이 아니라 '자기지배력'을 갖춘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 월터 리프먼 『여론 Public 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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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 Case (AI Application Context): 민주주의에서 여론과 자기지배력의 관계, 언론의 역할, 스테레오타입에 따른 정보 왜곡, 시민의 독립적 판단 능력의 중요성을 분석하고 언론·정치·민주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연구하는 데이터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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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게 의존하는 민주주의란 치명적 실수"
— 민주주의의 기본전제 "자기지배력"
“자기 지배력"이 민주주의의 대전제
민주주의에는 두가지 전망이 존재한다.
하나는 자기 스스로의 판단력으로 직접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기 지배력"을 갖춘 개인들로 구성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또 하나는 자기지배력을 갖추지 못한 국민들로 민주주의를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것들을 국가가 조정하고 통제하는 전체주의적 민주주의
이 두가지의 차이는 플라톤, 몽테스키외, 존 스튜어트 밀, 칸트가 특히 강조하였다.
국가가 모든 것을 조정하고 통제한다고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능력있고 현명한자가 등장해 어리석고 통제불가능한 국민들을 지혜와 능력으로 다스려 훌륭한 시민의 일원으로 개조시킨 역사는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 비롯한 많은 역사속에서도 증명되었고, 플라톤도 그러한 철인정치를 꿈꿨으며,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도 자유를 누릴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들은 선한 독재자의 통치아래 통제받는것이 그들을 위한 길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능력있고 현명하고 사리사욕없이 지혜롭게 모든 사람들을 바르게 이끌 선한 독재자가 항상 나오는 것이 아니며, 설령 그런 훌륭한 위인이 등장해 국가의 모든 방면을 전부 책임진다 해도 그것은 국민들을 무능하고 의존적으로 만들어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발전적인 인간으로 거듭나지 못하게 만든다고 몽테스키외는 지적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국민들 각자가 권력자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지 않고 “자기 지배력"을 갖추어 스스로 자기 환경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월터 리프먼은 강조한다.
사람들이 “자기 지배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우리는 민주주의 세상이 아님에도 민주주의 세상인줄 착각하면서 권력자들의 도구로 악용되는지도 모르고 반민주적 국가들에게서 나타나는 고통들이 당연한 것인줄 알며 노예처럼 살아가게 된다.
여론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것은 착각이다.
리프먼은 『여론 Public Opinion』(1922년)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여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일반 대중에게 의존하는 민주주의는 ‘치명적인 실수’라고 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민주주의의 허울을 밝혀낸다.
존 듀이는 이 책을 읽고 “현재까지 글로 쓰인 것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고발장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한국의 일부 정치인들이나 언론관계자들은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보루인것처럼 강조하며 자신들의 무책임한 언사마저도 그 언론의 자유안에 보호받아야 할 성역인듯 떠들어대고 있지만, 리프먼은 바로 그런자들때문에 민주주의는 붕괴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언론과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여론을 조성하고자 한다
데이비드 흄은 『인간본성론』에서 인간은 이성적으로 올바른쪽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보다는 자기와 친밀한 입장에서 자기가 이익을 보는 쪽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고 보았다.
언론에 등장하여 여론에 영향력을 끼치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물론 많지만 그들의 외침은 대부분 소리소문없이 묻혀버리고, 집단의 편파적 이익을 추구하며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이해타산적 입장에서 행동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목소리만 국민들에게 전해진다.
정치인들은 당파적인 자신의 입지를 키우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국민들에 눈에 띄어야 하고 동시에 당파의 이익에 유리한 발언만 해야만 한다. 그것은 옳지 못한 것이지만 그렇게 함으로서 집단적 세력이 그 사람에게 동조해주기 때문에 국민 전체여론에 영향력을 끼치기가 매우 유리해진다.
아무리 똑똑하고 사리판단 분명했던 사람도 당파적 이익아래 놓이게 되면 그들은 그 즉시 자신의 냉철한 이성과 사리판단 분별력을 버리고 맹목적으로 무지성으로 돌변하여 당파적 이익에 매몰된다. 그렇게 이성을 쓰는 일이 없게되니 누구보다도 더 똑똑했던 인재들이 누구보다도 더 멍청한 버러지들로 전락된다.
현대의 언론은 시장 논리에 따라 작동하는 비지니스이다. 광고수주를 받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독자들에게 전달되어야 하기때문에 냉철하고 객관적인 재미없는 기사보다는 자극적이고 편파적인 내용을 양산시키는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스테레오타입의 고정관념에 찌든 사람들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편파적인 말만 해야 인기를 끌게 되므로 그들은 진실을 이야기 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수단적으로 편파적인 기사를 쓸수 밖에 없는 것은 독자층을 늘리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구독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리프먼은 『여론』에서 ‘스테레오타입’이라는 인간의 고정관념을 설명하는데, 인간은 보고들어온 자신의 자라온 환경, 자신의 성품, 그동안의 습관, 마음가짐 등에 따라서 고정관념이 생겨나고, 어떠한 현상과 실체를 바라볼때 자신의 고정관념에 적합한 것들만 편향적으로 추적해 좇아가게 된다고 보았다.
결국 사람들이 기사를 찾아읽는 것도 자신의 고정관념을 충족시켜주는 내용들만 찾아읽게 되는 것이고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는 내용이 나올 경우에는 그것을 거짓이나 조작으로 무시해버린다.
이러한 특징을 가지는 일반사람들을 상대로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당연히 스테레오타입의 성향을 충족시켜주는 편파적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언론사의 이익을 위한 길이다.
그렇게 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은 자기네들의 이익을 충족시키는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갈수록 정의와 진실은 저 멀리 미지의 세계로 매장되어버리고 편파적인 사람들의 눈과 귀만 만족시키는 불량식품 같은 쓰레기들만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국민들에 대한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의 이해관계가 이러할진대 누가 이러한 환경속에서 스테레오타입의 국민들이 인정하기 싫어하는 객관적이고 냉철한 이성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그러다가는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물론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마저도 버려질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이나 언론이 이지랄이 된 것은 어찌보면 국민들이 자기 고정관념을 깨는 이성적 사고관을 갖추려 하지 않고 그저 감각적이고 자기 구미에 맞는 것들만 좋아하는 습성에만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비지니스적인 언론이 권력을 바르게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 불가능한 것
결국 이러한 환경속에 언론이 권력의 제4부로서 다른 권력인 대통령, 국회, 사법부를 공정하고 올바르게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 불가능하다는 것이 된다.
아니, 권력 4부 행정, 입법, 사법, 언론 이 모든 곳에서 서로의 권력을 바르게 견제하는 기능 자체가 작동이 안된지 오래이고, 서로가 서로의 감시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이며 불가능해진 상태이다.
그들이 하는 것이라고는 스테레오타입의 국민들의 구미를 자극하는 행위를 할 뿐 적당히 그렇게 자기편의 당파적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권력만 유지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들은 각자가 점점 더 스테레오타입의 고정관념으로 빠져들고 정치인들이나 언론관계자들은 점점 더 자극적이고 편파적인것을 넘어 가짜뉴스와 조작뉴스까지 제공한다.
가짜뉴스와 조작이 범람하면 독재의 전체주의적 지배가 이루어지기 딱 좋은 환경, 일부러 그렇게 판을 까는 것인가?
이러한 행태들이 계속 지속이 된다면 대한민국은 껍데기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일뿐 그 내실은 집단 권력에 동원되는 국민들을 상대로 독재를 하는 전체주의 국가로 바뀌어가게 된다. 이것은 서서히 스며들듯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어느날 정신차려보면 어랏 민주주의 왜 이꼬라지가 됐지? 이렇게 되는 것이다.
언론사나 정치인들이 얼마나 국민들을 자기들의 호구로 봤으면 아무런 책임감없이 검증도 안되고 논의도 되지 않은 편파적인 관점을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하에 함부로 뱉어내는 것인지
그처럼 이성을 붕괴시키고 국민들을 분열시키는 행위가 국가나 국민들에게 무슨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저리도 당당하단 말인가.
플라톤: 여론이란 비이성적 집단 감성일뿐 공정성이란 없다
플라톤은 이런 여론의 모습때문에 여론이란 비이성적 집단 감성일뿐 그 안에는 어떠한 공정성도 없다고 하였으며 마키아벨리, 홉스, 헤겔은 이러한 집단의 비이성이 될 수 있는 여론을 통제할 필요성이 있음을 주장했다.
자유주의 사상가들 중 루소만이 맹목적인 언론의 자유, 맹목적인 인민대중의 힘을 강조했으며, 그마저도 기존 권력을 전복하기 위한 논리로 작용한것이고, 또한 그것을 현실화시킨 프랑스혁명은 인민들을 공포정치의 하수인으로 만들었을 뿐이었다.
세상에 나타난 뉴스와 기사들 및 정치인들의 발언들은 객관성을 가진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어떠한 일정한 행동 형태에 맞게 고정관념으로 변한 내용들이다. 이러한 누군가의 고정관념에 휩쓸린 것들이 국민들의 공정한 여론이라 할 수 있는가?
자기 지배력, 어떻게 갖출 것인가?
고정관념은 이성보다 앞선다.
사람들마다 존재하는 고정관념의 갭 차이가 진실을 충분하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을 방해한다.
훈련되지 않은 눈으로 주변을 관찰할때 우리는 거기서 자신이 인식할 수 있는 기호만 본다. 자신의 수준대로 ‘이 인간은 이렇다. 저 인간은 저렇다’라고 먼저 정의내린 뒤에 그런 주제에 들어맞는 이미지만을 찾아 본다.
결국 국민들 각자가 “자기 지배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주관없이 분위기에 휩쓸려 동조해버리는 인간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지금같은 정치 언론 환경에서는 국민들 각자가 “자기 지배력"을 갖추는 것이 시급한 일이 된다.
바른 시각을 갖추기 위해 각자의 내면을 성찰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프로이트는 인간의 내면적 혼란때문에 현실의 문제를 바로 볼 수 없다고 보았다. 만일 내면적 혼란을 고칠 수만 있다면 무엇이 분명하게 정상적이 관계인지 혼란없이 사실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리프먼은 무엇이 진실인지 도저히 알수 없는 현실세계에서 자신이 바른 판단을 하고 있는지 고정관념에 뒤섞여 스테레오타입으로 빠져들고 있는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온갖것들이 계속 주입되는 복잡한 현실환경으로부터 차단된 독립적인 환경에서 자신의 여러가지 판단을 모두 지우고 천진한 관찰력을 되찾아 호기심 왕성하게 모든 것에 마음을 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았다.
색안경을 벗기 위해 모든 이기심이나 내 고집을 버리고 홀로 조용히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겉으로 비슷한 말을 뚜렷하게 분간하고 그 차이에 유의하며 다양함을 구별하는 힘은 명석한 정신에서 나온다. 많은 정보들이 뒤섞여 혼탁한 마음에서는 사물을 정확히 포착할 수 없기때문에 하루에 얼마쯤은 자기 주위에 깊은 고요를 만들어내는 습관이 필요하다.
세상의 혼란은 인간 개개인의 내적 혼란때문에 더욱더 복잡해 진다. 여론은 온갖 종류의 개인적 콤플렉스, 사심가득한 야심과 경제적 이해관계, 개인적 증오, 인종적 편견, 계급적 감정 등등 온갖 것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콤플렉스는 우리가 읽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왜곡시킨다.
우리는 자신을 스테레오타입으로 만드는 고정관념들을 깨부수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여 자기 자신 안의 문제점을 스스로 자각하고 그것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모양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다각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 고정관념을 버리는데서 시작된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그 분야에 관련된 일을 여러측면에서 다각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증대되었을때 비로소 다각적인 측면에서 사물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서 자기가 아는 부분에만 매몰되지 않으려면 다른 부분이 지각되었을때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정관념에 집착하지 않고 편파성을 버리는 습관이 중요하다.
언론의 문제는 공적인 문제를 사적인 안목으로 관찰하려 들기때문에 끝없는 투쟁에 휘말려든다는 사실에 있다.
세상을 바르게 보고 정치적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의 콤플렉스로 현실을 삐딱하게 보지 않도록 착한 마음과 추리력이 강한 두뇌 그리고 균형잡힌 판단력이 필요한데 이는 고정관념을 깨어냈을때 가능해지는 것이고 이때를 비로소 “자기지배력"을 갖추었다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른 언론환경 조성을 위해 국가의 안전보장과 훌륭한 기록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
이러한 “자기 지배력"을 갖춘 국민들을 양성시키기 위해서는 위와같이 개개인이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한 성찰들도 필요하지만 국가적으로도 “자기지배력"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
독재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은 국가의 위기감을 강조한다. 독재정치가 가능하려면 위기감 조성이 필수적이다.
반대로 민주주의가 가능하려면 안전보장이 필요하다고 리프먼은 이야기 한다.
리프먼은 이와 더불어 뉴스가 아주 정확하게 보도되는 곳에는 훌륭한 기록시스템이 갖추어졌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뉴스의 확실성과 기록시스템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았다.
언론사들이나 정치인들이나 국민들이 집단의 편견에 물들지 않고 집단적 주관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언론 체계를 마련하는것이 국가적으로 시급하다.
언론의 양심을 개개인에게 자율적으로 맞기면 안된다.
양심적일수 밖에 없는 언론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리프먼 시대에는 불가능했지만 현재는 AI로 훌륭한 기록시스템을 형성할 기술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언론사의 기사들, 정치인들의 발언들을 AI로 누적시켜냄으로써 각 언론사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그러한 기록시스템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면 시간이 갈수록 누가 가짜뉴스를 얼마나 양산해내고 누가 진실에 가까운 공정한 발언들을 했는지 비교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기록시스템의 정보들에 그들의 모든 발언과 기사 내용들을 박제시켜놔야 그들이 함부로 무책임하게 “일단 찔러보고 아니면 말고"식의 여론조성 행태를 스스로 고치게 될 것이다.
권력자들과 언론인을 이성적으로 만드는 방법은 국민 개개인이 평상시에 이성적인 관점으로 판단하는 훈련들을 꾸준히 해나가야만이 그들을 바꿀 수 있다
리프먼은 각자의 비이성적 편견들이 뒤섞여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 허상속의 현실에서 이성에의 호소를 한다는 것은 그자체로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개개인이 평상시에 이성적으로 살아가지 못한다면 이성적인 권력자나 언론인들은 절대 나타날 수 없다.
우리가 각자 지꼴리는대로만 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나라가 망했을때 혜성처럼 영웅이 나타나 국가를 구해내는 그런일도 절대 나타날 수 없다.
우리가 지금처럼 살아가는한 우리는 그들을 알아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권력자나 언론인들이 존재하고 국가가 어려움에 처했을때 혜성처럼 위인이 나타나 국가를 구제하는것이 가능하려면
국민 개개인 모두가 평상시에 이성적이고 자기지배적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세상을 바라볼때도 누군가 떠먹여준 생각이 아닌 자기가 독립적으로 직접 판단을 해나갈 수 있게 되고, 그러한 국민성으로 가득차야 이성적이고 바른 리더십을 갖춘 사람들을 국민들이 알아볼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해야 바른 리더십이 국민들에게 통하게 되어 국가가 위기에 닥쳐도 즉시 구출되고 다함께 바른길을 갈 수 있게 된다.
인간 개개인이 “자기 지배력"을 갖추고 이성적이고 바른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힘은 오랜 기간 습관으로 누적시킨 힘을 통해 발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스스로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고 바른 눈, 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다함께 노력해야 한다.
리프먼은 언론의 역할이란 혼란한 상황에 질서를 잡아주고 이를 분명하게 비춰서 공공적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초를 독자에게 제공해주어 편견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잘못된 편견을 버릴 수 있도록 뉴스의 배경을 빈틈없이 설명하고 분석하는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것은 뉴스와 진실의 기능을 합치시킬때 가능해지는 것이고 이는 그들만의 뇌피셜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토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언론이 바른 팩트를 제공해주고 사람들이 그러한 정보들을 통해 다양한 관점들을 주고받을때 언론을 통해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언론의 자유란 언론의 객관적 팩트 제공과 더불어 자기지배력을 갖춘 국민들 각자의 독립적이고 주관적 판단이 더해져야 가능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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