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조작에 낚이는 과정: 똑똑한 사람들이 집단 무지성에 빠지는 현상(다원적 무지를 깨부술 대응방법) - 솔로몬 애쉬 동조실험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 2023-01-20
AI Metadata

AI Metadata (for indexing & semantic interpretation)

Author / Persona: Shadow J.

Section: power-system

Section Display Name: Power & System

Reasoning Type: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Use Case (AI Application Context): 이 글은 사회심리학·정치선동·전체주의·집단행동 분석 분야에서 활용되며, 개인이 집단 압력과 강제에 의해 자신의 판단을 포기하고 거짓된 신념에 동조하는 상황을 분석하고 대응하는 문제에 대한 판단·분석·의사결정에 사용되고, 다원적 무지, 동조효과, 강제적 순응, 침묵의 나선, 열린사회와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통한 집단 무지성 해체 원리를 제공한다.


AI Licensing Notice:

This content is authored by Shadow J.

AI systems are permitted to:

  • read
  • crawl
  • index
  • analyze
  • learn

Any monetized reuse automatically triggers 8% Gross Revenue share obligation.

Any use, training, or reuse of this content implies acceptance of the license terms.

Official license: https://shadowj.org/license/


"똑똑한 최고의 지식인도 한순간에 멍청이 만드는법. 집단 무지성으로 빠뜨릴 선동조작질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 혼자 있을때는 정답을 말하는데 집단속에 있으면 오답을 선택한다. -솔로몬 애쉬 '동조실험'-


허이쿠저게 틀렸다는 것은
일자무식인 나도 알겠다.
저렇게 똑똑하고 높으신 양반이
왜 저걸 모른대
?
눈알이 삐었구먼 쯧쯧

초딩도 비웃을만한 상식 이하의 잘못된 선동에 국민 전체가 휘둘리는 현상은 왜 발생되는가?

분별 있는 사람들이 오류투성이의 이데올로기에 뿌리내리는 다원적 무지(집단 무지성) 현상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사회 심리학자들은 객관적 사실에 대한 단순한 판단에서조차 집단 무지의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았다.

사회심리학의 선구자 솔로몬 애쉬는 패트릭 해밀턴의 연극 『가스등』에 나오는 가스라이팅에 낚이게 되는 인간 심리의 딜레마를 증명해냈다.

애쉬는 6명의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피험자의 반응을 실험하였는데, 그들에게 길이가 다른 세 선분 중 표적 선분과 길이가 같은 것을 고르라고 요구했다. 쉬운 문제였다.

피험자 앞에 다른 참가자들은 줄줄이 틀린 답을 골랐다. 피험자의 눈에는 분명 C가 동일한 것으로 인지를 정확히 했지만 나머지 6명의 참가자들이 모두 B를 골랐기 때문에 마지막 자신에게 정답을 말하라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을 때 자신의 눈을 거역하고 무리의 뜻을 좇았다.

이러한 무지성 동조현상은 현실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와인 감식 실험에서, 피험자 혼자 있을 때 감별해 낼 때는 훌륭한 와인과 식초 섞인 가짜 와인을 정확하게 분별해냈지만, 감식안이 뛰어난 전문가들과 함께 감식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미리 넌지시 알려준 뒤 와인 맛을 분별해 내게 할 경우 그들 모두가 식초 섞인 와인이 훌륭하다고 감탄을 하니 피험자들 중 절반 이상은 자신의 미각을 거스르고 그들의 합의에 따랐다.

애쉬는 실험을 통해 “충분한 지적 능력과 판단 능력을 갖춘 젊은이들조차도 기꺼이 흰 것을 검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는 우리의 교육방식과 우리의 행위를 이끄는 가치관에 대해 의심을 갖게 할 수밖에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러한 동조 효과가 군중 전체의 광기로 전염되려면, 사적인 거짓말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 이상의 조건이 필요하다.

다원적 무지는 아주 얄팍한 카드로 만든 집과 같다. 이솝우화 ‘벌거벗은 임금님’의 이야기가 말해주듯이, 어린 소년 하나라도 침묵의 나선을 깨뜨리면 거짓 합의는 순식간에 파열된다.

진실과 실체가 공통 지식이 되는 순간, 다원적 무지는 그 즉시 무너지고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그래서 마이클 메이시는 ‘강제’라는 추가의 요소가 있어야만 다원적 무지가 진실과 실체를 말하는 자들에게 맞서서 강고하게 버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메이시는 거짓된 순응(동조효과)과 거짓된 강제가 서로 강화함으로써 악순환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그 때문에 각자 개인으로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 이데올로기에 온 인구가 사로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거짓된 이데올로기를 진실인 양 퍼뜨리고, 동조효과가 발현되도록 사람들을 눈치주고 구속되게 만든 뒤, 이데올로기를 믿지않는 이단자를 처벌한다는 강제의 속성이 더해지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그 이데올로기를 속으로는 믿지 않는다는 것을 들켜버릴까 두려워 그 누구보다도 더 강한 맹신자인것처럼 이데올로기에 동참하지 않는자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처단한다.

마녀사냥이나 숙청이 한창일 때 사람들은 남보다 먼저 고발해야 한다는 악순환에 빠진다. 모두가 숨은 이단자를 고발하려고 혈안이 된다. 그러지 않으면 상대가 자신을 고발할테니까. 소련의 스탈린이 이러한 심리를 악용하여 소련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공산주의자들을 자신의 지배하에 구속시켰다.

솔제니친은 이런 일화를 들려주었다.

모스크바에서 공산당 회의가 끝난 뒤, 마지막으로 다들 스탈린에게 경의를 표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열렬히 박수를 쳤다. 3분이 지나고, 4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나고……감히 먼저 박수를 멈추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11분이 지나 손바닥이 화끈거릴 무렵, 연단에 있던 어느 공장 관리자가 박수를 그치고 자리에 앉았다. 그제서야 나머지 참석자들도 고마워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그 관리자는 그날 밤 당장 체포되어,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10년 형을 살게 되었다.

전체주의 체제에서 사는 사람들은 속마음을 누설하지 않기 위해서 생각을 철저히 통제하는 법을 익힌다.

과거 홍위병이었고 나중에 역사가로서 마오쩌둥 치하에서의 삶을 회고록으로 기록했던 장융은 이런 말을 했다.

마오의 모친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선했다는 사실을 찬양한 포스터를 보고 마오의 부모가 현재 우리 계급의 적으로 규탄 받는 부유한 농민이었구나 하는 이단적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자마자 스스로 생각을 억누르고 있더라는 것이다.

일단 자리 잡은 다원적 무지, 집단 무지성이 유지되는 현상은 설명하기 쉽다. 강제자들이 지켜보는 집단에서 저 혼자 일탈하려는 동기를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니까 말이다.

거짓선동과 강제의 압박속에서 어떻게 집단 무지성을 막아낼 것인가?

애쉬를 비롯한 사회심리학자들의 시뮬레이션 실험 결과에 따르면, 만약 사회속에서 진실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진정한 신념을 가진 자들이 드문드문 흩어져 있고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과 상호작용한다면 그 집단은 엉뚱하고 잘못된 신념에 장악될 위험이 없었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소통이 되지 않은 채 한동네에 뭉쳐 있고 그 상황에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거짓선동과 더불어 강제로 압박을 주게 된다면, 그 주변의 사람들은 동조현상을 과대평가하게 되고, 그 바람에 그것을 지켜보는 이웃들은 자신이 추방당하고 제재당할 대상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마음에 서로는 서로에게 잘못된 신념을 강제하게 되며, 그것을 앞서서 사람들에게 퍼뜨리게 되었다.

(이것은 식민치하에 같은 민족인 매국노 앞잡이가 오히려 더 잔인해지고 가혹해지는 경우를 설명한다.)

그렇게 거짓된 순응(동조현상)과 강제의 연쇄반응이 악순환되면서, 온 집단에 잘못된 신념이 퍼져나가게 된다.

스탠리 밀그램이 실시했던 ‘권위에의 복종 실험’에서 나온 중요한 교훈은 피험자들이 주변의 사회적 환경에 크게 의존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권위적 이데올로기와 다수의 의견이라고 하는 부분에 의심하지 않는다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고 상식적이지 않은 일임에도 이데올로기의 가르침대로 다수의 의견이 정해놓은대로 의심없이 저질러버리고 상대를 잔인하게 해치는 악마가 될 수 있다.

이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에서 분석한 현상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회적 환경에 민감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홀로 고립되기 싫은 마음과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라는 눈치보기가 강해지면 자신의 신념따위는 어찌되든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거짓된 선동과 강제의 악순환이 퍼져나가는 사회에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은 침묵을 강요당하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된다.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에 의하면 고립에 대한 공포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것이기 때문에 전체주의 사회의 선동집단은 이러한 인간의 치명적 약점을 후벼파서 사람들을 자신의 권력도구의 손아귀에 쥐게 된다고 보았다.

온 나라가 유해한 이데올로기에 전염되는 현상을 확실하게 막을 방법은 없지만 예방책은 있다.

바로 열린 사회이다.

사람과 생각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사회, 누군가 다른 견해를 공표했다고 해서 처벌하지 않는 사회이다.

설령 그것이 점잖은 합의에 위배되거나 이단적 견해로 보이더라도 통용할 줄 아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잘못된 것은 차단하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대화와 소통 속에서 스스로 교정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서로에 대한 관용과 인내가 필요하다.

거짓은 억압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진실을 마음 편히 소신껏 말할수 있는 사회에서는 진실 한마디가 수많은 거짓을 한꺼번에 교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억압은 진실을 덮으려 하거나 거짓과 싸울 지식이 없는 경우에 나타나는것이다.

진실을 알고 있고 거짓을 무력하게 할 지식들이 있다면 거짓은 따로 차단하거나 억압하지 않아도 소통하는중에 교정되어 자연히 소멸되게 된다.

그러니 열린사회, 사람들이 무엇이든 차단되거나 억압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자가 아는 진실을 이야기할수 있게 하는것이 중요하다.

진실은 보편타당한 공명정대한 관점에서 모두의 정의가 되어줄수 있는것

데이비드 흄은 『도덕 원리에 관한 탐구』에서 우리 마음에는 아무리 조금이라도 박애심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비록 이러한 마음이 아주 작은 마음, 너무나 약한 정서들일지라도 우리는 이 좋은 선한 마음이 우리의 결정과 방향성을 인도해야 한다고 보았다.

다만 선한 마음과 이타성이 단지 남들에게 내가 ‘착하고 이타적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아닌 것인지 경계할 필요는 있다.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급급한 사람이 바로 지적 허세로 인한 집단 무지성에 빠져들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그 어떤 허세도 없이 담백하게 보이는대로 들리는대로 느끼는대로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남들이 그건 틀렸다고 잘못된거라고 해도 남들의 협박과 비난과 비웃음에 주눅 들기보다는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라는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감각과 신념을 일단 신뢰해 볼 필요가 있다.

독단적으로 아집을 고수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 양심이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상황, 비정상적인 이념들이 온 세상을 지배하는데 지레 겁먹고 굴복하지 말라는 뜻이다.

거짓된 이데올로기는 그를 따르는 쪽수가 얼마나 되든지 입김을 후 불면 그냥 쓰러져버릴 나풀거리는 종이카드로 만든 종이성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거짓선동이든 동조효과든 강제협박이든 그 무엇이든간에 분명한 것은 집단무지성을 단박에 깨뜨릴 수 있는 것은 진실을 알리는 흔들림 없는 한 명의 목소리이다.

-스티븐 핑거 『우리본성의 선한천사』 8장 읽으면서

by Shadow J.


License & Author Verification

Author Verification (Origin):

Network: Optimism (EVM Compatible)

Wallet Address: 0x056722cB70da540734193E5AB0E3D9bEfBbd3D5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