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권의 실체, 그것은 환상일 뿐(feat.분탕질에 대처하기)-월터 리프먼 『환상의 대중』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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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soning Type: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Use Case (AI Application Context): 이 글은 민주주의 이론·국민주권·여론 형성·정치선동·사회갈등 관리 분야에서 활용되며, 대중이 복잡한 국정에 직접 관여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정치적 분탕과 허위 여론을 어떻게 식별하고 통제할 것인지 판단하는 상황에 대한 분석과 의사결정에 사용되고, 공적 판단 기준의 확립, 책임 있는 통치 엘리트의 역할, 공개 토론을 통한 진실 검증, 상이한 집단이 공존하는 모두스 비벤디의 원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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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국민주권이 있다고 생각해? 국민주권은 허구다. 이론상에서만 군림할뿐"

— 각자의 판단의 기준이 존재하는 세상은 국민주권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월터 리프먼, 『환상의 대중』


월터 리프먼은 『여론 Public Opinion』(1922년)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각자가 스테레오 타입(자기만의 고정관념에 빠진 상태)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지배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론』의 속편이라 할 수 있는 『환상의 대중 The Phantom Public』(1925년)에서 리프먼은 과연 대중이 민주주의의 교과서에서 나타난 주권자처럼 훌륭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며 군림하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자 국가의 주요 문제를 다루고 해결할 수 있으며 국민들 모두가 국가권력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는 민주주의 이론에 대해 리프먼은 단호하게 “그것은 환상일 뿐"이라고 국민주권 민주주의의 허울을 간파했다.

대중은 민주주의의 아웃사이더일 뿐

점차 복잡해져가고 커져가는 ‘대사회’는 일반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국민들은 점차 민주주의의 아웃사이더가 되어간다.

국가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대중이 아니라 책임있는 몇몇 엘리트의 몫이 되어 버렸다. 국가 권력과 국정의 제반 요소를 좌우하는 그들은 민주주의의 인사이더이다.

민주주의의 국민주권 이론은 마치 국민 대중이 자기의 입맛대로 자기가 원하는 음식을 언제든 직접 만들 수 있다고 선전하지만, 실제로 대중들은 그 자신이 음식을 직접 만들거나 어떤 음식을 먹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음식에 맛이 있다 없다를 품평할 수 있을 정도일 뿐, 그 품평마저도 제대로 조사되는지도 의문이다.

이처럼 리프먼은 대중이 권력을 갖는다는 민주주의 체제란 유령과 같은 이론적 환상일 뿐 실리적으로도 또한 실제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는 실리적으로 가성비 딸리는 체제로 국가를 퇴보시킬수도

실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은 민주주의 체제가 국민에게 실리적으로 이롭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국민 대중이 국가 전반에 대해 속속들이 모조리 잘 알고 있고 각종 제반 요소들의 위선과 기만을 간파해 내며 바른 것들만 선택하여 진정 민주주의를 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국민들 모두가 정치에만 집중해야 되므로 자신의 본업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더욱이 정치하는 위정자들이 정직하게 국정운영을 하지 않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 같은 의심이 들게 된다면 더더욱 국민들은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자신의 본업에 매진하지 못하고 정치가 똑바로 작동하고 있는지 실시간 감시하며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한 채 신경쇠약에 걸려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처럼 가성비 측면에서 볼 때 자칫하면 민주주의는 국가를 퇴보시키게 만들게 될 가능성이 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정치에 대한 무지 때문이거나 극심한 피로감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정치가 바르게 운영될 것이라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정치에 신경을 쓰지 않고도 안심하여 각자의 본업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국민은 자신의 분야가 아닌 국가 전반의 일에는 정통하지 않다

민주주의가 실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점점 복잡해지고 커져가는 ‘대사회’ 속에서의 국정운영은 보다 전문적이고 훈련된 엘리트들을 요구하게 된다는 점에서 나타난다.

대중은 국가적인 일에 정통하지도 않고, 관심도 오래가지 않으며, 중요한 가치를 분별해 낼 근거를 가지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무엇이든지 개인적 입장에서만 해석하며, 공적으로 사물을 판단해 내지 못한 채 어떠한 사건이 대립해 그것이 자극적인 멜로드라마나 스릴러처럼 꾸며졌을 때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러한 아웃사이더 대중들이 전문적이고 충분히 훈련된 인사이더 정책결정자의 결정과 판단을 흔들고 좌지우지하려는 민주주의 시스템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할뿐더러 옳은 것도 아니다.

이렇듯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대중권력이란 실리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영리한 국민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정치로부터 등을 돌리고 어리석은 대중을 자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진실을 가늠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방관할 수밖에 없다. 그냥 내 본업에만 충실할 수밖에

무엇이 진실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의사 표명을 개진하는 것이 분별을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탕에 분탕을 더하게 만드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일단은 침묵을 유지하고 먼발치에서 철저히 중립적 아웃사이더 방관자의 시선으로 국정을 바라보는 것이 차라리 국가가 바르게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방법일 수 있다.

리프먼의 표현대로 국민 각자는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사회” 속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 자신의 본업에 충실할 때 개인적 발전뿐만 아니라 국가적 발전이 더불어 성장하는 것이고

심리적인 관점에서도 남에게 쓸데없이 신경을 빼앗기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몰입하며 자신을 성장시켜 나아갈 때 정신병이 생기지 않고 행복감이 충만해질 수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각자의 본업에만 충실하면 정치와 국정이 엉망이 되지 않을까?

민주주의의 분탕 종자들은 위와 같은 민주주의의 실리적 실체적 한계 때문에 국민들은 단지 추천이나 비추천만 선택할 수 있을 뿐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진정한 국민의 여론이나 정의로운 대중의 발언으로 보이는 것들도 그 일부는 물밑에서 권력의 흐름을 좌우하려는 사람들의 보조하에 이루어지는 경우들도 많다.

그래서 그들은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두고 실시간으로 감시를 하든 아니면 아예 무관심하여 자신의 분탕에 관심이 없든 상관없이 ‘내가 이런다고 니가 어쩔껀데~?‘라는 고약한 심보로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분탕을 친다. 아무리 감시를 하고 정당한 비판을 해도 어차피 자기들 멋대로 이기적으로 굴 것이라는 뜻이다.

민주주의 분탕들이 원하는 것은 사회적 혼란이고, 국민들이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을 유도한다.

그렇게 되어야 올바른 정치를 하는 사람마저 똑같이 악랄하고 이기적인 분탕 취급을 하는 식으로 물타기를 할 수 있어서 자신들의 분탕이 감춰지고 여론을 선동하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틈을 타 대중들을 다른 데로 눈을 돌려놓고 자신은 이득을 갈취한다.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 분열된 채 싸움에 결말이 나지 않더라도 서로의 주장을 존중하면서 공존의 길을 찾아 나가기

이러한 민주주의의 실체 속에서 리프먼은 두 가지를 강조한다.

하나는 혼란스럽고 다양한 가치들이 속출하는 ‘대사회’ 속에서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시키려는 ‘일치’를 추구하기 보다 ‘화해’를 추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단 하나라는 통합과 일치를 추구하려고 들면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그 하나에 포섭당하지 않기 위해서 이 악물고 싸우게 되고 논쟁과 혼란은 끊이질 않게 된다.

어쩌면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포함한 대인관계라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이 맘에 안 드는 사람들과 마음에 안 드는 상황투성이이고 그런 막장 속에서 완벽하게 내 맘에 드는 것으로만 내 주변을 구성하고자 하면 언제나 투쟁과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마음에 안 드는 투성이인 사람들과 상황 속에서도 더불어 살아가는 화해의 능력을 내 스스로 키우지 않는다면 평화와 안정은 영원히 없고 내 삶은 분탕 속에 휘둘리다 소진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기는 법을 키우기 보다 화해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대립과 갈등은 결코 소멸시킬 수 없다. 이새끼를 처단해봤자 더한 새끼가 쳐들어오기 마련이다. 미워하고 갈등하더라도 상대를 없애는 방법보다 같이 끌어안고 나아가도 안전한 방식을 찾아야 한다.

분탕질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분탕 종자들은 사람들의 니편 내편, 이쪽 저쪽, 우리와 느그들 이라는 분별심의 심리를 악용하여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이 다름과 혼란, 가치의 충돌 그 자체를 거부하지 않고 다름을 받아들이게 되면 오히려 분탕종자들이 힘을 못쓰게 된다. 이간질을 해도 아무도 싸우지를 않는다면 이간질하는게 의미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탕의 방종까지 관용으로 받아들여야 된다는 말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생각의 자유와 발언의 자유인 것이지, 분탕의 방종까지는 아니다.

분탕의 방종은 그 자체로 생각의 자유를 가진 사람들의 정당한 발언까지도 엉망으로 왜곡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실을 뒤엎고 분탕으로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국가와 국민의 안녕과 발전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에 이들을 진실되고 성실한 사람들과 분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누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인지 누가 이간질을 하는 분탕인지 선뜻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리프먼은 ‘화해의 공존’을 추구하는 것과 더불어 또 다른 하나를 강조한다.

분탕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는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누가 진짜이고 가짜인지를 바르게 분별해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사회 공동의 ‘판단의 기준’이 존재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분탕을 분리시키고 제거하는 방법은 그들을 (말그대로) 격리시키거나 퇴출시키는 식이 아니라 진실과 분탕을 극명하게 대비시킴으로서 제3자의 사람들이 뭐가 진실인지 저절로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분탕하는 사람은 그대로 두되, 분탕질만 제거시키는 것이 공존의 시대의 분탕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기준삼을 수 있는 공적인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공존의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되는 것이다.

만약 분탕을 제거하고 혼란을 다스려야할 책임자가 오히려 진실과 분탕을 분별할 수 없도록 자유를 핑계로 분탕을 방조하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을 훼방놓는다면 바로 그자가 분탕을 유도하고 있다고 봐야 된다.

사적분별심을 거두게 만들어 줄 바른 공적 기준을 세우는게 시급하다

나만의 사적인 분별심은 사회갈등과 혼란을 일으키는 주범이 되지만, 공적인 분별이 되는 바른 기준은 사회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분명 필요한 것이다. 이걸 혼동하면 안된다.

사적인 분별 기준은 자기만의 색안경, 자기만의 수준하에서 남과 세상을 함부로 재단해버리기 때문에 그러한 각자의 기준은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러한 환경하의 민주주의는 화해나 관용은커녕 결론 안나는 싸움과 혼란만 가중된다.
(이는 이전에 쓴 글 중에서 ‘소피스트 vs 소크라테스의 대립’과 ‘경험주의 사상의 한계’를 살펴보면서 자세히 언급하였다.)

보통의 민주주의 학자들은 이것을 교육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주장했지만, 리프먼은 회의적으로 보았다.

가치를 분별해 내고 판단의 기준을 세우는 것은 가르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 펼쳐지는 무수한 현상들은 그 시대 상황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성과 감정에 따라서 그 기준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어떠한 문제가 어떠한 파장으로 펼쳐지게 될 것인지는 일반 대중이 쉽게 통찰할 수 없다.

그래서 리프먼은 바른 기준을 국민 각자가 알아서 양심껏 세우기를 기대하기보다는 국가 공적으로 그것을 바로 세우고 국민들을 이끌어야 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 살펴볼 수 있었던 것처럼 리프먼도 사회의 법치와 규칙 같은 것들은 세상의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이것은 공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와 국정의 인사이더들이 할 일은 단순히 추천 비추천밖에 할 수 없는 대중들을 속이고 선동하여 자기들 이로운 쪽으로 분탕치며 표심이나 지지율만 올리는데 혈안이 될 것이 아니라

세상의 혼란스러운 여러 가지 문제들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바른 표준’을 선점하고 그것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고, 이것은 민주주의 세상에서 우리 당파가 대중들의 다수표를 얻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다.

국민들도 정치인들을 바라볼 때, 자신의 유일한 주권이라 할 수 있는 추천과 비추를 어느쪽으로 던져야 국가가 바르게 작동하는데 쓰일 것인가를 판별하게 해주는 ‘바른 표준과 기준’을 제시해 주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냥 분탕을 심화시켜 혼란 속에서 자신의 실체를 흐리게 만들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인기나 이익을 꿰어보고자 하는 사람인가를 가늠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정과 정치에 대해 무지하더라도 정치인의 말을 들어보면 그자가 국민들이 바른 판단을 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내어 정신을 차릴수 있도록 의지를 전달하고자 사람인가, 아니면 그저 분노만 심어 분탕을 치면서 정신을 망가뜨리는 사람인가 정도는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더 나은 표준을 제시하는가? 바로 그가 차세대 리더가 된다.

리프먼은 많은 토론과 대화를 하다 보면 결국 상대의 본심과 실체가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을 국민의 대표이고 국민의 민심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의 기만과 이기심을 파헤치고 진실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토론과 대화를 공개적으로 자주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해 민주주의의 환상 속에서 위정자들의 기만과 이기심을 파헤치고 세상의 혼란에 속지 않을 방법은 그 사회의 인사이더들이 바른 ‘판단의 기준’을 제시해 주고 세상의 혼란과 분탕을 점차 정리해 주고 있는가를 가늠해 보는 것이다.

사회의 인사이더들이 바른 기준을 제시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혼란을 정리해 주는 세상이 되어야 국민들이 아무런 힘도 없이 꼴랑 추천과 비추천만 박아대는 민주주의의 체제의 아웃사이더일지라도 바른 기준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4~5년에 한번 던질까 말까 하는 투표만으로도 바른 사람을 선택할 수 있게 되고 ->또 바른 기준이 바르게 정착하고 -> 국민들이 바른 선택을 하는 능력들이 더욱 계발되고 -> 다시 또 바른 인사이더를 알아보고 좋은 사람을 선택하고 -> 그들은 더 좋은 기준들을 만들어내고… 그러한 선순환이 돌아가며 사회는 발전하게 될 것이다.

참고로 분탕을 조장하는 사람들은 그 혼란을 정리할 명확한 기준과 팩트를 조목조목 제시하는 사람들을 마치 까탈스럽거나 좀스럽다는 식으로 인신공격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탕이 심할수록 더욱 자세하고 집요하게 기준을 세워 무엇이 잘못된 현상이고 그것의 파장이 어떠할지 명백하게 가려주어야 한다.

고대 아테네에서 소피스트가 득세하여 사람들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구분할 줄 모르고 혼란만 가득했던 시대에 소크라테스가 등장하여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집요하게 질문하며 돌아다녔던 이유가 바로 판단의 기준도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스스로를 교정하여 더는 흔들리거나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혼란한 세상의 국정의 인사이더들은 이것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해내는 사람을 대중들이 신뢰해야 할 사람이다.

by Shadow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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