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Archive] 이태원 할로윈 참사의 방관자 효과, 그것은 집단주의 문화 때문이지 MZ세대의 개인주의 때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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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군중 속 개인은 책임 분산과 집단 동조 심리로 인해 독립적 판단 능력을 상실하며 방관자 효과가 발생하고, 이는 개인주의가 아니라 집단주의 군중 구조가 만들어내는 시스템적 현상이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독립적 이성과 자기판단 능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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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자 효과, MZ세대의 개인주의탓?"
— 가스라이팅 멈춰라. 집단주의 문화탓이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많은 국민들을 경악하게 한 이태원 참사 현장의 비인간적인 반응들은 MZ세대의 개인주의, 이기주의, 쾌락주의, 몰상식함 때문이 아니다.
이건 엄연히 따지면 제노비스 신드롬(방관자 효과)을 발현시킬 수밖에 없는 집단주의 문화의 하나의 현상이었을 뿐이다.
이전 몇몇 게시글들 속에서 집단주의를 경계하고 개인성을 보호하라고 그렇게 외쳤던 이유가 개인이 거대한 집단무리 안에 들어가게 되면 자신의 객관적 이성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군중무리의 덩어리에 일체화가 되어 군중 밖의 일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해져버리기 때문이다.
1963년 키티 제노비스는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자신의 집 앞에서 어느 한 남자의 공격을 받고 칼에 찔리는 사건이 있었다.
제노비스는 그 옆을 지나가는 수십명의 이웃들을 향해 경찰에 신고해달라 거듭 요청했으나 그 누구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경찰에 처음 신고한 것은 사건이 일어난지 30분이나 지난 후였다.
모든 이웃들이 극단적 개인주의자들처럼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이 사건이 있은 후에 심리학자 빕 라타네와 존 달리는 간질발작을 일으키는 사람(연기자)이 있는 현장속에 1. 혼자만 있는 경우 2. 두세명 정도의 소수의 무리가 있는 경우 3. 많은 수의 무리가 다함께 있는 경우로 나누어서 실험을 하였다.
연구결과 혼자만 있는 경우 85%가 즉각적으로 도와주었지만 관중의 수가 늘어날수록 이 수치는 60%, 10%로 떨어졌다. (정확한 수치는 실험 내용마다 달랐지만 공통적인 결과는 대중의 수가 증가할수록 무관심의 정도도 커졌다는 것이다.)
또한 도움요청에 적극적으로 반응한 시간도 집단무리의 사이즈가 커질수록 시간이 지연되었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식의 이 방관자 효과는 이태원 할로윈 참사에서 나타난 대중들의 모습을 통해 집단주의 군중속의 개인들이 어떻게 해서 그토록 비인간적이고 비이성적 행태가 나타날 수 있게 되는 것인지를 설명해준다.
이러한 방관자 효과는 나 혼자 있을때는 주관적인 판단을 내리며 책임감도 강해지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되면 다른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판단의 우유부단함도 동시에 커져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려고 한다.
이태원 할로윈 축제에 참가한 대부분의 MZ세대들이 극도의 개인적인 성향 때문에 그러한 몰상식하고 비인간적 비이성적 행태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 어떤 누구라도 거대한 집단의 군중무리 속에 들어가 있으면 집단밖의 상황에 대해서 무책임해지고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사건이 지난 뒤 그것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는 사람은 그 군중의 무리속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현장에 있더라도 그 집단무리 밖에서 지켜보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들도 정작 그 집단안에 존재하고 있었으면 아마 거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몰상식하게 그런 밀집된 곳으로 들어갈 생각을 할 수 있느냐를 묻는다면, 에리히 프롬은 답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고립과 고독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그보다 더한것도 하게 된다고 말이다.
수년간의 코로나 시국에 더더욱 디지털로만 소통하는 MZ세대들은 고독의 고립감이 그 어떤 세대보다 클 수밖에 없다. 어른들의 세대처럼 대면 소통을 하며 살아본적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의 많은 저서들 속에서 인간은 고립의 공포를 가장 두려워하며 자신의 고독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독립적인 자유와 소신있는 판단력을 버리고서라도 집단의 군중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는 마음으로 군중속에 자발적으로 들어간 개인이 어떻게하든 그 군중들과 그 분위기속에 동조하려고만 하지, 자기만의 독자적인 판단력으로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지금 여론에서 MZ세대들에게 이기적이다, 몰상식하다, 개념이 없다며 공감능력이 없어서 그렇다느니 개인주의 성향을 고쳐야 한다느니 어쩌고저쩌고 비난들을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몰상식한거고 이해력이 없는거다.
군중심리라는 사회심리학적 용어가 괜히 나왔겠는가?
거대한 집단안에 개인이 들어가게 되면 몰상식해지고 비이성적으로 되어버리는게 당연한거다.
냉철한 이성은 나 혼자일때 생겨나는 것이고, 옆사람이 함께하고 또 그 함께하는 무리의 사이즈가 커지면 커질수록 내 개인적인 성향이나 독립적인 주관은 쉽게 드러낼 수 없게 된다.
밀집된 군중속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독자적인 판단을 하기보다는 그저 군중속 어디선가 들려오는 구호명령 소리에 아무생각없이 따르는 반응적인 도구가 되어버릴 뿐이다.
게다가 전체적인 소통이 불가능하게 한 강렬한 음악소리까지.
이태원 참사를 통해 MZ세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굳이 따져야 된다면 그들은 오히려 더더욱 개인주의로 나아가야 맞는거다.
아무리 MZ세대의 개인주의 성향이 나쁘다고 해도
개인적 이기주의는 기껏해야 주변사람들 이익이나 빼앗고 눈꼴시리게 하는 정도이지만
집단적 이기주의로 매몰되면 그건 공동체를 파괴하고 사람을 죽이고 국가를 전복시키는 수준이 된다.
이것은 대중심리를 연구했던 학자들 한나 아렌트, 알렉시스 토크빌, 데이비드 리스먼, 에리히 프롬, 오르테가 Y 가세트, 월터 리프먼 그 모두가 개인이 집단속에 매몰되면 개인성을 잃고 비이성적인 폭력적 덩어리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만약 어떠한 사회적 여론이 지금의 MZ세대들에게 그들만의 개인주의를 비난하며 집단주의로 포섭하고자 세뇌시키려고 한다면 이건 사회적 권력이 MZ세대들을 심리적으로 조련하기 위한 가스라이팅임을 알아채야 한다.
사회가 갈수록 혼란스러워지고 사람들이 갈수록 무개념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언론이나 사회적 여론이 사회의 기본개념들을 왜곡하여 잘못 써버리며 사람들의 정신머리를 혼란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가 기본개념들을 바로잡기 위해 그 당시 아테네를 장악하고 있었던 소피스트들과 하나하나 맞짱 뜬 이유가 다 그런 것들을 바로잡기 위함이었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사회속에서 보여지는 비이성적 행위들은 개인주의적 성향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들보다 집단속에 매몰되어 있는 군중들이 일으키는 문제들이 더 많다.
수십년동안 집단주의 문화를 축제처럼 여기게 만든 장본인들이 누구인가?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은 높은 수준의 이성과 덕성은 개인이 자발적인 독립성을 키워내는데서 발달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역지사지를 가능케 하는 동감과 공감의 이타적 원리 또한 이성의 범주이지 감성의 영역이 아니다. 감성에 충만해지면 오히려 역지사지가 불가능해진다.
결국 감정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감성팔이와 자유주의를 말살시키는 집단주의는 인간의 이성과 덕성을 통한 역지사지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이는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흄, 몽테스키외, 존 스튜어트 밀의 사상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이다.
이제는 집단으로부터 해체되어야 한다.
개인으로 돌아와서 나만의 냉철한 이성을 바로잡아야 할 때이다.
그래야만 공존에 필요한 역지사지, 공감능력, 배려심, 소통능력 그 모든것을 발달시킬 수 있다.
(덧붙임) 디지털 소통만으로 고립감이 심해지는 MZ세대들에게 대면소통을 할 수 있는 축제같은 것에 아예 참가하지 말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나마 최선은 “소규모” 축제들과 모임들을 통해 대면 소통을 이루어 나가는 식으로 그들의 고립감을 해소시키는것이 안전면에서나 고립감을 해소시키는 소통면에서도 그나마 이로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고독감은 진짜 내 자신을 찾아내고 그것을 세상에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해소되는 것이지 남들과 부대낀다고 해소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집단적 군중 무리 속에서의 방관자 효과는 누군가가 한명이 군중의 무관심을 뚫고 행동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같이 힘을 보태려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군중심리의 연쇄작용을 잘 이용하면 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움직이게 만들수도 있다.
다만 방관자 효과를 깨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빠른 도움을 요청하고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정사람을 정확하게 특정하여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한다.
(ex “저기 파란모자 쓰신 안경 쓴 아저씨, 지금 당장 119 불러주세요. 빨간티 입은 여자분은 제 손을 잡아주세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특정인을 지명하여 구체적인 요청사항을 말하면 그 사람은 책임감을 느끼고 도와주게 된다고 한다.
군중심리의 부정적 연쇄작용을 중간에 끊어낼 수 있는 것은 개개인의 냉철한 이성과 주관적 자기판단이다. 집단주의적 축제문화를 안전하게 즐기고 싶다면 평상시에 독립적이고 자발적인 자기 이성을 바로 세워내는 습관을 꾸준히 키워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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